가깝고도 먼 부모님 이야기
<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2 부모
DAY 2 부모_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에 대해 써보세요.
"이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해."
냄새나고 수상한 투명 봉지를 들고 있는 엄마가 누나와 나를 데리고 베란다로 갔다. 주황색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멈춰 나에게 봉지를 건넸다. 숨길 수 없는 인상을 쓴 우리와 달리 엄마는 차분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콩쥐팥쥐 이야기,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계모의 모습인가. 음식물 쓰레기를 내가 왜 버려야 해. 분명 새 어머니라서 우리를 구박하려고 하신 거야. 우리를 미워해서 그러신 거야. 초등학생 고학년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항심과 악취를 내뿜는 오물이라는 거부감이 눈썹을 저절로 모아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만나야 하는 엄마였기에 요구대로 응했다.
"자, 이제 해 봐."
주황색 음식물 쓰레기 통을 열자 농축된 악취가 올라왔다. 우엑. 사전에 한껏 숨을 들이마셨지만 비집고 들어오는 악취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얼른 투명 봉지를 풀어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털어넣었다. 애호박 꼭지, 먹다 남은 두부 조각, 다듬는 과정에서 버려진 취나물 이파리 등 미처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식재료가 쏟아졌다. 그렇게 속을 게워내듯 봉투를 비우고서야 음식물 쓰레기 통을 닫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 의기양양하게 다했다는 표정을 짓고 성큼성큼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걸 왜 우리한테 시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네.
더 돌이켜 보면 엄마는 우리 삼남매가 돌아가면서 의무적으로 설거지 하는 날을 정했다. 금토일 중 나는 일요일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 형은 금요일, 누나는 토요일. 형은 일부로 자신의 설거지 날에 약속을 잡아 설거지 의무를 회피했다. 당시는 그런 형이 얄미웠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 뭐든 반항하고 싶은 나이였다.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포함해 세탁기 돌리는 법, 빨래 개는 법, 밥 짓는 법 등 집안일의 대부분을 엄마가 직접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새 엄마라서 우리를 괴롭히는 줄 알았다. 그때 엄마는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었을 것 같지만, 그때 나는 어떤 이유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엄마가 미웠다. 옆에서 아무 말 없이 TV만 보던 아빠도 미웠다. 악당으로부터 우리 삼남매를 방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삼남매와 새 엄마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유일한 중재자였던 아빠는 그 시기를 침묵으로 버텼다. 사춘기 시절에는 한 달 동안 엄마랑 이야기를 안 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시간이 흐르며 상처가 아물고 찢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20살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독립을 시작했다.
20살 때는 주말마다 11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 5,800원으로 11시간, 이틀이면 13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지원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대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교를 다니며 한 달에 많이 벌 때는 120만원도 벌었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 전 기간에는 주방 설거지 파출부로 일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12시간 동안 술집 주방에서 일일 알바로 이곳저곳을 다녔다. 설거지 담당, 재료 손질 담당, 홀서빙 담당. 명절에는 더 많은 일급을 주기에 기꺼이 돈과 명절을 바꿨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부모, 정확히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건 생활력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기본적인 가사 노동은 누구나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배우기 싫었던 집안일은 나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식재료 다듬는 법,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오물이 흐르지 않도록 받침을 갖다 대는 것, 행주 삶는 법, 싱크대 청소하는 법, 수채구를 분해해서 세척하는 법, 냉장고 정리하는 법 등 다양한 도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주어진 일을 해결했다. 그러니 어느 식당이든 당연히 나를 반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덩치 좋은 젊은 남자였기에 그랬던 것도 있다.
억척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생활력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엄마와의 거칠었던 풍랑은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 주었으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의연함을 심어주었다. 꿈보다 해몽인지, 이 모든 걸 엄마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생각하건데 엄마도 참 힘들었겠다. 아빠만 믿고 새로운 집에 들어왔는데 말을 안 듣는 삼남매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엄마도 참 대단했고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