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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샤 Oct 18. 2024

내가 좇고 있는 건 무엇일까

<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15 꿈

DAY 15 꿈_남 몰래 간직해 온 꿈에 대해 써보세요.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회로, '꿈명함만들기대회'가 있다. 교내상 담장자로서 기안문과 계획서를 검토해서 결재를 했다. 진로부장님께 결재를 했다는 의미와 함께 나도 꿈명함 만들기를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꿈을 이루셨는데 해보고 싶으신 걸까요? 난 태국 파타야에서 바다 바라보며 모닝커피 마시는 게 꿈이에요~^^"


눈에 밟히는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이미 꿈을 이루셨는데'


음. 내가 지금 꿈을 이루었나?

꿈의 실마리를 잡아당겨봤다.

 


#교육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수시 원서를 쓰는 날이었다. 고전번역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한문학과 원서를 5개 준비했다. 한 곳은 어느 학교로 넣을지 몰라 비워두었다. 그렇게 담임선생님께 수시 원서 접수 예정 학교와 학과를 제출했다. 하나가 비었는데 아쉽지 않겠냐고 하셨다.


대학교 한문학과

◇◇대학교 한문학과

□□대학교 한문학과


선생님께서는 한문학과 말고도 한문교육과가 있는 학교 한 곳을 추천해 주셨다. 그때만 해도 교사라는 직업에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한문학과와 한문교육과의 차이를 몰랐었다. 심지어 교대와 사범대의 차이도 몰랐다. 그렇게 마지막 원서까지 모두 채웠다.


△△대학교 한문교육과


아쉬웠던 수능까지 마치고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자 수시 합격한 대학교로 면접을 보러 갔다.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을 보며 부러웠다. 그런 압박감을 느끼는 건 생애 처음이었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로 돌아와 대학교 면접 이야기를 풀어가며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어느새 합격자 발표날이 다가왔다. 수험번호와 이름을 입력했다. 고등학교 생활 3년을 심판받는 날이었다. 성실하게 살았어? 그럼 합격, 탱자탱자 놀았어? 그럼 불합격!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회 버튼을 눌렀다.


'축하합니다. △△대학교 한문교육과 입학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사범대학교에 덜컥 입학했다. 마냥 한자와 한문을 좋아하는 학생이었기에 한문교육과에 입학해도 '한문'에 대해 흥미가 있었지 '교육'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사범대생으로 20살을 맞이했다.


꿈의 조각을 더 찾고자 실마리를 당겼다.



#특성화 고등학교? 일반계 고등학교?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원서를 위해 내신 점수를 받아 들고 고등학교 커트라인을 살펴봤다. 특성화 고등학교 모집이 끝나야 일반계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갈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미리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나는 조리과학고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중식도로 멋지게 양파를 써는 요리사를 동경했다. 흰 조리복에 옷핀으로 고정한 모자까지. 주변의 영향도 있었다.


그때 엄마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고모도 식당을 운영하셨고, 나는 음식을 좋아했고. 내 관심사와 주변 환경이 오묘하게 조합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리사라는 꿈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조리과학고에 원서를 넣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단번에 거절당하니 속상하긴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했으면 한다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막내의 숙명을 되새기며 꿈을 고이 접었다. 


언젠가는 다시 펼칠 수 있겠지?



# 십자수 배웠던 4학년

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서 운영되는 여러 동아리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다. 배드민턴, 그림 그리기, 과학 실험, 십자수. 활동적인 성향이 아니었기에 배드민턴은 패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 그림 실력은 처참하기에 그림 그리기도 패스. 처음으로 50점을 못 넘긴 점수를 받은 과학은 자신이 없어서 패스. 그래서 남은 십자수반에 들어갔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수가 더 많았던 십자수반에서 나는 처음으로 적성에 맞는 걸 찾았다. 차분하게 앉아 십자수 공예를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하나하나에 구멍에 실을 끼워 넣다 보면 어느새 큰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고, 중간중간 찔리는 바늘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작업하는 고요함이란, 내가 좋아하는 거구나.



나는 어떤 꿈의 좇고 있던 걸까. 

진로부장님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그려진 이유가 궁금했다. 고전번역가, 요리사, 십자수 작업을 꿰뚫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고심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차분함'이었다. 차분하게 십자수 작업을 하고, 차분하게 재료를 손질해 요리하고, 차분하게 고전을 번역하고. 나의 꿈은 차분함이었을지 모른다. 차분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


나의 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다. 무엇을 하든 차분하게, 어디서 하든 차분하게. 이걸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채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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