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14 우연
DAY 14 우연_우연히 경험해서 더 좋았던 기억에 대해 써보세요.
전날 밤이나 아침에 계획을 세워 To-Do 리스트를 지워가는 하루가 당연한 줄 알았다. 한가함이 쌓여 무료함이 되고, 무료함이 쌓여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되었을 때 역마살이 낀 것처럼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싶어지는 기간이 매해 찾아온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경상북도 영주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놀러 가겠다고 전했다. 우리가 모여 살았던 곳이랑 워낙 떨어진 곳이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일정이 맞아 연락하고 1시간도 안 되어 버스표를 예매하고 짐을 챙겼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친구의 이름, 낯선 지역에 내 사흘을 맡겼다.
등산을 안 한 지 몇 년 된 것 같았다. 영주의 소백산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올라가고 싶어졌다. 소백산 등산을 제안했고, 그 친구는 동의했다. 그렇게 등산을 시작했다. 약 1,400m를 오르는 데 4시간 정도 걸렸다. 내가 오르자고 했는데, 중간에 내가 내려가자고도 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친구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절경이 펼쳐졌다. 이런 경치를 본 적이 있나 싶었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의 귤과 계란도 감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경치를 보자 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 경치를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사진을 보내드리고 목소리에 경관을 담으려고 했다.
하루가 언제 이렇게 지나갔나 하는 날들이 끝나고 다시 한가한 기간이 찾아왔다. 주변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얼른 해외여행을 가보라고 한다. 나는 여행에 큰 지출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어디로든 튕겨 나가고 싶은 시기에 국내 여행지로 눈을 돌린다. 우리말이 통하고 친숙한 곳에 가고 싶다. 겁이 많다.
그렇게 전주로 떠났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전주를 한 번도 안 가봤다. 초코파이가 유명하다, 성당을 가봐야 한다, 한옥 마을을 꼭 가야 한다는 잔소리가 우연히 떠올랐다. 그래서 전주에 이틀을 맡겼다.
전주에 처음 도착하고 놀랐던 건 택시 요금이었다. 1,900원 기본요금으로 운영되는 택시에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칼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낮잠을 잤다. 책을 챙겨 카페로 갔다.
성당이 바로 보이는 스타벅스 카페 창가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오렌지빛 구름과 함께 고풍스러운 성당의 모습. 차분한 전주의 모습과 조화로워 보였다. 시간이 늦어 성당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성당에 다시 방문했다. 아침과 저녁,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관광객을 가득했던 한옥 마을에 한적함이 찾아왔다. 책을 더 읽고자 숙소를 나섰다.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읽었다. 독서모임의 장소로 활용되는 카페에 방문했을 때 남겨진 짧은 소개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 바로 구입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통찰에 재밌게 읽혔다. 그렇게 전주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며칠 전부터 관광지와 음식점을 찾아보고 일정표를 만들어 꼼꼼하게 확인했을 나였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우연히 마주한 지역으로 몸을 실었다.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 우연한 경험이 계획했던 여행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우연함에서 오는 불확실성이 기대감, 설렘을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