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18 슬픔
DAY 18 슬픔_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에 대해 써보세요.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는 일이란 어렵다. 누군가 울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를 내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퍼하고 있다. 감정과 표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겉모습만 보고 감정을 판단한다. 웃고 있네, 기쁜가 보다. 울고 있네, 슬픈가 보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입이 모아져 있네, 당황했나 보다. 하지만 상황과 맥락을 잘 살펴보고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진솔한 감정이 표정 위로 올라오게 된다.
어렸을 때의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거울 속 보이는 내 표정을 감정으로 인식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표정과 감정이 일치하지만, 간혹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드러난 표정을 보고 감정을 가늠했고, 감정과 일치하지 않은 표정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도 표정을 우선시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표정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래된 빨간 조끼를 입었다. 엄마가 10년 넘게 입었다던 빨간 조끼. 그게 이뻐 보여 학교 갈 때 자주 꺼내 입었다.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당시 우리 반에서 일탈을 좋아하는 A가 와서 뭐라고 했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욕설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 후 A는 "캬악"하는 소리와 함께 침을 뱉었다.
'툭'
방수 기능이 다 떨어진 패딩 위로 떨어진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A는 홀연히 사라졌다. 얼빠진 사람처럼 자리에 서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다. 길가에 가만히 서있을 수 없었기에 우선 공원으로 향했다.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침을 뱉는 행위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A는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에게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공원 화장실로 가 패딩에 묻은 끈적끈적한 침을 닦았다.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옷을 빌려 입었는데, 그 옷에 침을 맞은 건데. 저 아래에서부터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해가 지는 공원 화장실에 홀로 걸어가 빨간 패딩에 묻은 침을 닦고 있는 모습을 엄마에게 들켜서는 안 됐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 빨간 패딩 조끼를 내놓으며 말했다.
"엄마, 이거 빨아야 해!"
"왜?"
"뭐가 묻었어! 얼른~!"
늘 그렇듯이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빨간 패딩 조끼를 건넸다.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눈물을 꾹꾹 누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흐느꼈다. 들켜서는 안 됐다. 동급생에게 침을 맞았다는 수치심보다 엄마 옷에 침을 맞아 오는 아들이라는 게 더 싫었다.
엄마의 속상함이 싫어서 내 속상함을 감췄다. 비단 엄마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 나로 인해 슬퍼한다면 나를 기꺼이 감출 수 있었다. 억지로 포장된 표정을 드러내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내 감정을 꺼내 봤다.
그래서 나는 안다. 상대방의 표정이 전부가 아님을. 표정은 감정의 조각이다. 내가 널 이해하고, 너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은 자기의 착각일 수도 있다. 감정은 개인의 고유한 영역으로 당사자가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 가늠하기 힘들다. 감정을 드러내기 전에 스스로 감정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게 먼저다.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표정으로 드러내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더 나아가 상대방의 표정을 바라볼 여유를 갖고, 표정에 숨겨진 진솔한 감정을 어루만지는 어른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