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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샤 Oct 21. 2024

가끔씩 네가 생각나

 <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17 이별

DAY 17 이별_지나고 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에 대해 써보세요.


단체 모임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멀리서도 눈길이 갔었다. 친화력이 굉장히 좋고 키가 아담하여 호감인 그 사람은 대구 사투리를 써서 더 좋았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 옆에 앉을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보도블록 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는 그 사람을 위해 보조 배터리를 건넸다. 세심한 모습으로 호감을 사려고 했다.


모임에서 끝나고 함께 식사를 했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내가 수저를 꺼내고 물을 꺼냈다. 막내라서 그랬다라기 보다는 몸에 밴 습관이었다. 너무 깍듯이 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심드렁하게 그 사람이 말했다. 이런 모습도 있었네.


각자 집으로 향해야 할 때, 번호를 받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연락처를 받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추워하던 그 사람에게 겉옷을 빌려준 덕도 있어 보인다. 


우리는 꽤 멀었다. 그래도 좋았다. 300km 정도가 무색하게 매일 연락했다. 머리를 자르고서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추천 노래를 받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행사 장소에 대신 가서 기념품을 받아 오기도 했다. 완연한 봄 보름달을 보며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대구에 있는 그 사람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밤 10시에 퇴근하고 짐을 챙겨 심야 버스를 타보기도 하고, 수성못 드라이브를 가기고 하고, 대구 곱창거리를 다니기도 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코미디 빅리그와 같은 방청도 자주 갔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 내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180도 넘는 기름이 내 발에 쏟아진 것이다.


기름을 닦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수백 개의 바늘로 발을 찌르는 듯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급하게 사장님께 연락을 했다. 감사하게도 저를 응급실에 데려다주셨다. 발가락에는 기괴한 수포가 일어났으며 절대 물에 닿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마침 그 시기가 장대처럼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당분간 일도 다니지 못하고 수업도 들으러 갈 수 없었다. 


다리에 화상을 입어 한 달 정도 집에만 있었다. 여러 상황이 겹쳐 꽤 우울했다. 그 사람은 취업 준비로 바쁜 시기였다. 내 우울함을 숨기고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던 그 사람을 위로해줘야 했다. 위로해 주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지만 참았다. 계속 참아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답답함이 쌓여 결국 헤어졌다.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겠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사투리를 쓰며 표현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당근 케이크는 아직도 좋아한다. 젠장.


그 사람은 어리숙한 나를 그나마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관계에서의 희생과 소진, 감정의 표현과 매몰에 대해 나만의 기준과 생각을 정리하게 해 줬다. 내 시간과 돈을 쓴 만큼 상대방이 좋아해 주겠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감정에 푹 빠진 상태로 의사결정을 하면 후회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렇게 다음 사람을 만날 때는 나만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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