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경력 교사의 교육철학 세우기
교대와 사범대를 구별도 하지 못했던 제가 덜컥 교사가 되었습니다.
조회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교실에 들어가기 두려웠습니다. 아이들 앞에 서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은 요란한 깡통 소리처럼 느꼈습니다.
「질문으로 성장하기」란, 저의 깡통을 채우는 일입니다.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50가지 질문으로 교육철학 세우기를 목표로 합니다.
3. "내가 학생이었을 때, 어떤 선생님이 좋았나요?"
#심부름으로 쌓인 믿음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장면이 몇 있다. 30명이 넘는 북적북적한 학급의 두 번째 분단 맨 마지막 자리에 앉아 건빵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눈이 세상을 하얗게 뒤엎었을 때는 쓰레받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에게 눈을 퍼부었던 장면도 생각난다. 운동장에서 체육 자유 시간을 가지면 몰래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요플레를 사 먹기도 했다. 지금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얼굴을 들 면목이 없다.
나는 성적에는 관심이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쁜, 적당히 말썽을 피우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들이 좋았다. 졸졸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보여줄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동분서주하며 선생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뿐이었다.
심부름을 자주 받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심부름의 종류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어느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출석부 담당, 유인물 전달과 취합, 행사를 위한 책상과 테이블 준비, 특별실 청소와 문단속, 학급 행사를 위한 금전 관리 등. 간식 같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선생님의 기대감과 칭찬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여담으로 나처럼 심부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심부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마법의 문장이 있다.
"선생님! 저 그거 해봤어요. 그때처럼 하면 되죠?"
나는 사회에서 경력직을 선호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자원을 쓰는 일은 나에게 큰 효능감을 느끼게 했다. 긍정적인 경험이 있는 대로 나의 몸이 자연스럽게 끌렸다. 고등학교 때는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 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했고 청소년 회관에서 진행하는 인권 행사에 종종 참여했다.
#흔쾌히 조퇴를 받다
나의 기본 정보가 적혀있는 종이를 가운데에 두고 담임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무섭다고 소문난 역사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다. 장래희망에 적혀 있는 단어를 보고 질문하셨다.
"한자 급수가 있어?"
"네. 1급 가지고 있습니다."
"오~"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외우고 시험을 봤던 터라 한자급수 자격증 1급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올라올 수 있었다. 나의 삶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한자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직업을 떠올렸다. 그래서 적은 '고전번역가'를 보고 담임 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거다.
동양고전 관련 연구와 출판을 하는 전통문화연구회가 있다. 매년 서울에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연구회에 가입이 되어 있던 터라 발표회 참석 메일이 왔다. 고등학생인 나보고 참석을 하라고 보낸 메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회에 가입된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 메일을 보고 나는 가고 싶었다. 내가 이해할 만한 게 없을 것 같았는데도 가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걸리는 건 담임 선생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수요일 14:00,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서 열리는 학술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학교에서 12시에 조퇴를 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이 허락을 해주실까 걱정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교무실에 들어갔다. 사정을 말씀드렸다. 당당하게 참석하겠다고, 참석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참석하기 힘들겠죠?'라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게 선생님은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증빙 서류도 받지 않으셨다. 농담이신가 긴가민가했다. 더 이상 묻지 않으시고 나를 보내주셨다. 학교를 나설 때 의기양양했다. 행사에 간다는 마음도 물론 좋았지만, 나를 믿어주신 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더 기뻤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
매해 새로운 학년이 되면 올해는 어떤 선생님과 함께할지 긴장 반 기대 반으로 학교로 간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를 믿어주셨던 분들이라는 것이다. 어떤 심부름을 시켜도 잘 해내겠다는 믿음, 조퇴를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보여주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상대방이 나를 온전히 믿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에 부응하고 싶어진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을 배웠다.
나 또한 그들처럼 의심보다는 믿음을 먼저 보여주려고 한다. 조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땡땡이를 치지 않을 것이고, 무슨 일이든지 맡길 만한 학생이라고 믿어주고 싶다. 나름 연습할 문장도 생각해봤다.
"든든한 ○○에게 맡기고 싶어."
"이런 일은 △△이가 정말 꼼꼼하게 해."
"□□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한번 해봐. 선생님은 네 능력을 믿어."
이 믿음의 씨앗들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