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감정 다스리기 그리고 "reframing"

예민과 일상 사이에서.

by minsooooyam

나는 성격이 예민한 편이다.

다정하게 보이는 편이지만, 실제로 성격이 다정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을 예민하게 캐치하는 편이며 이를 잘 다독여주기 때문에 다정하게 보인다. (아마도 잘 웃고 둥글둥글한 인상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사람들은 나의 성질머리에 익숙해지기까지 당황스러워하는 일이 꽤나 잦다.


이러한 예민함은 나의 불안과도 많이 연결되어있다.

불안이 내가 겪는 많은 괴로움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깊게 다루기엔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따로 다룰 예정이다. 예민함, 불안함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할까?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졸업은 하면 뭐하고 살지? 와 같은 질문들은 내가 내내 갖고 있던,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질문 중 일부이다.

아마도 많은, 특히나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들은 이러한 생각에 계속해서 괴로움을 겪고 있지 않을까?


요즘 나는 학교에서 academic coaching이라는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학교를 통해 배정받은 코치와 한 학기 동안 매주 (혹은 2주에 한 번씩) 일정 시간 동안 만나며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우고, 적용하며 피드백을 통해 수정해나가는 서비스이다.


기본적인 방법들을 배우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적용해나가는 와중에 요즘 나의 코치는 나의 멘털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최근 우리는 reframing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이 나의 멘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면서 상당히 큰 충격에 빠져있다. 나는 전업 학생인 만큼 당연히 나의 일상이 공부를 중심으로 흘러가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실패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했다.


논문 프로포절을 작성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내가 꿈꿔왔던 박사 생활을 시작하겠구나 하는 기대가 컸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며 게으름/농땡이/procastinating을 일삼는 나의 모습에서 실망이 계속되었고, 진도는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으며, 매일 공부를 놓지 않았음에도 매일매일이 실패의 연속이었다. 책이나 논문을 읽으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고, 가장 중요한 글쓰기는 계속해서 미뤄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아직 충분히 읽지 못했기 때문에.


코치는 나를 다독여주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는 공부 말고도 외부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예를 들어, 호르몬이라던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스트레스, 공부를 하면서 경험하는 타인과의 '비교', 한정적인 자원 등이 그러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하지는 않은 편이지만,) 생리가 시작하기 약 열흘 전부터는 비교적 예민해지고 타인의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웃으며 넘길만한 이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거나, 곱씹으며 분노하는 편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것에 분노하면서 공부에 써야 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따라서 생산성은 줄어든다. 원래대로였다면 좌절하고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마는 악순환이 이어졌을 것이다.


코치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눈 이후, 화가 나는 순간 문득 어? 오늘이 며칠이지? 생리는 얼마나 남았지? 내가 이 정도로 화가 날 만한 일이었나?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순식간의 나의 분노는 사그라들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Reframing은 내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완벽한 학생"의 이미지를 다시 그려보는 것이다.

친구들은 돈을 벌고 "사람 구실"을 하고 있을 동안, 공부가 업인 나는 하루에 9시간을 내리 앉아서, 논문을 착착 써 내려가서 그들만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상적인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를 못했다는 데서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공부를 놓지만 말자.' '일단 앉아서 5분이라도 해보고 안되면 다른 일을 해보자!' 이런 느낌이랄까?

공부를 업으로 삼은 이상 이것은 장기전이며, 모든 과정이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내가 공부 기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해주는 과정이었다.

--내가 가장 놀랐던 사실은, 내가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데 상당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돈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만 해!라는 잘못된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reframing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책감을 버리는 것이다.

마냥 즐겁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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