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하기

능력에 대한 의심

by minsooooyam

지금까지의 내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무난"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무난하게 공부를 해왔고, 무난하게 사회생활도 했으며, 무난하게 취미생활을 갖고 있다. 나름 밸런스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공부를 계속해가면서, 나의 능력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든다. 과연 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럴 능력이 있는가? 왜 나는 이렇게 뒤처지고만 있는 것인가?

여기에는 나의 성향과 경험, 그리고 외부적인 요소가 모두 영향을 미쳤겠지.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마냥 뒤처지고 있지만은 않는 것 같다. 나름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 큰 학회에서 상도 받아봤고 최소한 내가 이런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소위 말하는 elevator pitch)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닌 후부터는 이런저런 상을 받을 때 신이 나는 마음보다는 내가 왜? 이걸 왜 주지?라는 의구심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상을 받고도 신나기보다는 의아한 마음이 드는 내가 너무 이상했고, 그런 내 모습이 가슴 아팠다.


결과적으로 불안장애로 어느 정도 투약 과정을 거쳤고, 동시에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상담서비스를 받으면서 이제는 약을 먹지 않고도, 아 내가 또 과도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제동을 거는 정도까지는 발전했다.




얼마 전 펠로우십 지원을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공부, 거쳐온 과정 등을 밟아가며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꾸 "안될 것 알면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안에 따른 패턴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서 이런 고민을 세명의 조언자에게 나누었고, 각각 인상 깊은 대답을 해주었다.


먼저 나의 코치는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아카데미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히나 백인 남성이 아닌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당연한 감정이며, 이럴 땐 실제로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주변에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중에 펠로우십을 지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잘 생각해보자. 박사과정을 하는, 혹은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2%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미국의 대략적인 수치인 듯하다)뿐이며, 이중에서도 펠로우십을 지원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요컨대 네가 지금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것이고 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코치는 내 경험 중 감정적인 지점을 공감해주었고, 수치를 통해서 내가 하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를 다시 파악해주었다.


두 번째, 나의 가장 좋은 친구 S는 늘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말로 표현해주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가 보아왔던 나의 모습을 설명해주었다. 석사과정을 함께하면서 그는 내가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고 이야기했다.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몇 번에 걸쳐서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던 것 같다.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S는 '산만 하'게 보일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사실은 나의 강점임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학교 라이팅 튜터이자 좋은 친구인 M이 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들었던 조언을 나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교수님이 M에게 말하길, 거절이나 실패가 감정적으로는 힘들지만 대학원생이 경험하는 거절이나 실패는 그의 노력을 의미한다. 거절을 당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다시 말해 결과와는 상관없이 일상적인 루틴을 벗어나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다. 충격적인 표현이라 사실 그의 연락을 받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잊기 쉬운 이야기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 그것에 매몰되기 쉽다. 특히나 공부를 하는 사람의 경우, (어떤 형식이 되었건) 평가가 공부의 목적이 되는 경우가 꽤나 많다. 결과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상황을 마주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의 몫으로 페이퍼 피드백, 시험 점수, 혹은 무언가 지원을 했을 때 합격 혹은 불합격과 같은 직접적인 결과를 계속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했을 경우, 그다음에서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발전해야 하고 못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공부--나의 경우에는 유학생활과 대학원 생활--는 무언가를 배우고 지식을 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과정보다도 나의 능력을 평가받는 것에 더 집중하는 구조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성향에 이 과정이 더해지면서 불안함이 가중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기표현을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향에 언어적인 측면까지 더해져) 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점차 사라지면서 불안감을 넘어 패배감까지 안고 가게 되었다. 학계에 남아있는 것이 고통이며 두려움이 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노력 자체가 능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세 사람 덕분에 다시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나의 불안감을 받아들이면서도 나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나 거절 역시 나의 노력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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