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더 특별했던 그날의 밥상

그리운 내 엄마

by 민쌤

평범해서 더 특별했던 그날의 밥상

_그리운 내 엄마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밥상이 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식탁 위에는 늘 그렇듯 된장찌개와 몇 가지 반찬이 놓여 있었고, 엄마는 바쁜 손길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고 계셨다.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어쩐지 그날의 공기는 조금 더 따뜻했던 것 같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늘 엄마 밥상이 그리웠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늘 내 손으로 밥을 지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밥상에는 엄마의 맛이 없었다. 그래서 친정을 찾을 때면 꼭 엄마 밥을 얻어먹고 오고 싶었다.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면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일을 하니. 그냥 앉아.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

그 말에 나는 늘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날도 똑같았다. 그러나 그 평범한 밥상이 내게는 마지막이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40년 넘게 서울에서 밥장사를 하셨다. 포장마차에서 시작해 백반집까지, 늘 끼니를 차려주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밥 먹는 시간에 제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손님들이 몰려오기 전, 혹은 모두 떠난 뒤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엄마는 늘 그 점을 미안해하셨고 불쌍히 여겼다.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새 밥을 지어 우리 앞에 놓아주셨다. 그 정성은 미안함을 넘어선,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


시집가서 직접 밥을 지으며 살다 보니, 남의 집에서 얻어먹는 소박한 반찬조차도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똑같이 밥을 먹어도,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위로와 안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특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뼈 있는 닭발 요리였다.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양념이 골고루 배어든 닭발을 한 입 먹으면, 어린 시절의 내가 순간 되살아나는 듯했다. 매번 그 음식을 해주실 때면 엄마는 내 그릇을 힐끗 보며 말씀하셨다.

“가시… 아니, 뼈 잘 발라 먹어.”

나는 그 말이 잔소리 같아 웃으며 넘겼지만, 엄마는 내 입 주변에 묻은 양념을 보며 피식 웃으셨다. 그 미소는 소녀처럼 순수했다. 그런데 그 웃음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밥상을 얻어먹은 지 일주일 뒤, 엄마는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쓰러지셨다. 응급실로 향했지만, 오랜 세월 몸을 돌보지 못한 탓인지 기력이 이미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지병까지 겹쳐 결국 끝내 깨어나지 못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너무나 짧고 허망한 이별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밥상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때는 그저 평범하다고 여겼던 반찬들이 사실은 엄마의 삶이자, 우리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엄마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엄마가 차려주신 수많은 밥상들이 바로 그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다시 받을 수 없는 밥상이다. 그러나 엄마의 손맛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맞벌이 가정이라 매일 삼시 세끼를 해 먹기는 힘들지만, 문득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떠올리며 따라 해보곤 한다. 겉절이를 담그다가, 고등어를 졸이다가, 된장찌개에 애호박을 썰어 넣다가 문득 엄마가 그리워져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 맛은 달라도,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잠시나마 엄마를 그리워해 본다. 비록 엄마처럼 능숙한 손맛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정성과 마음을 담는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마지막 밥상은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내 아이가 나를 떠올릴 때, 그 기억 속에 따뜻한 밥상이 함께 있기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삶의 가장 소중한 사랑을 밥상 위에 담아 전해주고 싶다. 엄마가 남겨주신 마지막 밥상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처럼, 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범해도 좋다, 다만 나답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