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나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나
어릴 적 나의 꿈은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다. 은행에 갈 때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언니가 창구에 앉아 상냥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눈에 그 모습은 무척 근사해 보였다.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단정한 태도로 일하는 언니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은행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돈을 많이 만져보고 싶다는 현실적인 바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 스스로 단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늘 부족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엄마는 식당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했다. 우리는 가게 안 작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다가, 결국 아버지가 옥상에 지어 준 조그만 방으로 옮겨야 했다. 좁고 어수선한 공간에서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학원은커녕 책 한 권 사달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부하고 싶을 때 곁에서 등을 두드려주지 못한 빈자리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끔은 생각했다. ‘만약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결핍과 부족함을 껴안고 살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은 거꾸로 이해될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나의 삶도 그러했다. 부족했던 과거는 지나와 보니 이해가 되었고, 그 과거가 현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책으로 집 안을 가득 채우며 산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한 채 꽂혀 있고, 어떤 책은 프롤로그만 읽고 덮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고르고, 손에 들고, 몇 장이라도 넘기는 그 과정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다.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갈증을 메우는 일이자, 현재의 나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피노자는 “기쁨은 존재를 넓히는 힘”이라고 말했다. 책은 내 존재를 넓혀 주는 도구이자,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동반자다.
돌아보면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단순히 직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 다른 이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은 직업의 이름을 빌렸을 뿐, 본질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은행 창구에 앉아 있던 언니를 바라보며 꿈꾸던 나는, 지금은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글을 쓰며, 따뜻한 말을 나누는 어른이 되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바라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꿈은 종착지가 아니라 방향표다. 어린 날의 꿈은 이미 지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향해 걷고 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이름으로, 그러나 분명히 나만의 길 위에서. 지금의 나는 책을 읽고 쓰며, 그 속에서 생각을 나누는 삶을 꿈꾼다. 그것은 어린 시절 은행 창구 앞에서 반짝이던 희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나는 내가 바라던 삶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