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스데이의 효과

함께하는 책읽기

by 민쌤


수스데이의 효과

_함께하는 책읽기


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저녁 시간을 비워 두기로 했다.

이름을 붙이자면 ‘수스데이’. 수요일엔 스터디 데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문제를 풀고, 누군가는 조용히 앉아 생각한다. 그저 두 시간 동안 조용히 자기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다.


처음 이 시간을 기획할 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학원생의 10%만 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 두 시간 동안 조용히 집중한다는 것은, 어른의 기준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주 2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이 시간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30분쯤 지나면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이 나올 거라 예상했고, 분위기는 곧 흐트러질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오래 앉아 있었고, 생각보다 깊이 집중했다. 서로를 자극하지도, 떠들지도 않았다. 그 장면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기준이 먼저 깨진 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 옆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침묵을 나눴다. 그때 깨달았다. 가르침은 설명이 아니라 함께하는 태도라는 것을.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선생님, 책이 재미있어요?”
“어른인데 왜 계속 책을 읽어요?”
“공부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이 달라졌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책 읽어요?”
“어디가 재미있어요?”
“그건 무슨 이야기예요?”

아이들의 질문이 바뀌었다는 건, 공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어른은 공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배움을 멈추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는 중요해.”
“책을 읽어야 해.”
이런 말들은 이미 충분히 들어왔을 것이다. 대신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도 공부할 수 있고, 어른도 책을 읽으며 질문하고, 어른과 함께하는 공부의 시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공부는 특정한 나이에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도구여야 하고,

할 수 있을 때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이어야 한다. 그 사실을 몸으로 알게 해주고 싶었다.


책은 혼자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을 때 더 깊어진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침묵을 나누며 각자의 속도로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각자의 속도로 나에게도 배움의 밀도를 높여 주었다.


수스데이는 거창한 교육 실험이 아니다. 조금 느리고, 조금 조용한 시도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자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천천히, 꾸준히, 함께.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말이 아니라 지속되는 모습으로
공부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


“아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배우지 않는다.
아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
— 칼 융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이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배움은 시작되고 있으니까.

목요일 연재
이전 25화10분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