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쓴다
2025년 연말.
우리 세 식구는 몇 달 전부터 괌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짐을 싸서 경북 칠곡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기차를 타고, 전철까지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여행 중이었지만, 그 와중에 나는 하나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오늘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한다. 이제는 생활이자 약속이 된 루틴이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변수가 된다. 시간이 흐트러지고, 장소가 바뀌고,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래서 결국 노트북을 챙겼다.
기차에서 쓰고, 카페에서 쓰고, 이제는 공항 바닥에 앉아 글을 쓴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귀찮고,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러지 못했다. ‘이 정도는 하루쯤 쉬어도 되지’라는 변명이 늘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일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고, 지금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이며, 내가 스스로에게 책임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집중이 완벽하지 않아도, 문장이 고르지 못해도, 그냥 쓴다. 멈추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이라고.
하루를 미루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지만 미뤄진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계속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쯤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하루쯤은 ‘해야 할 일’ 없이 지나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 그런데 그 ‘한 번’이 무너질까 봐, 나는 결국 다시 노트북을 연다. 완벽하지 않아도, 잘 쓰이지 않아도, 그래도 쓴다.
늘 시간이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려 애쓴다. 시간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면 상황이 바뀌어도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고, 수없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 과정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은 ‘계속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이렇게 계속 간다고 해서 빠른 성과가 눈에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시간이 결국 나에게 어떤 일이든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남겨줄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만한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내 삶 역시 언젠가는 그 값에 맞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여행 중이라도, 바닥에 앉아서라도, 그냥,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