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지만, 남겨두고 싶은 것들

by 민쌤


어색하지만, 남겨두고 싶은 것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사진을 찍을 일이 거의 사라졌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얼굴을 내어준다는 것 자체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추억이 너무 적다는 사실이 문득 서운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뭐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별일 아니었던 순간들이 나중에는 돌아갈 수 없는 장면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능한 한 많은 풍경을 남기고, 가능한 한 많은 가족사진을 찍자고. 부지런히 카메라를 들고, 괜히 한 번 더 불러 세워 웃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 괌 여행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생각이다. 예전에도 나는 비슷한 일을 해왔다. 아이가 자랄 때마다 찍어둔 사진들이 어느 날 사라질까, 흩어질까 두려워 가벼운 앨범으로 만들어 두었다. 수백 장의 사진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모두 인화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스티커 사진처럼 여러 장을 묶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완성해 나갔다.


그 앨범이 문득 떠올랐다. 이번 여행도 그때처럼, 뜻깊고 어렵게 마음먹고 온 시간인 만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사진이 아니라, 기억을. 그래야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웃었던 시간, 함께 걷던 순간들, 말없이 곁에 있던 날들을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가 되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끔은 마음이 아프다. 성인이 되면 더 많은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할 텐데, 힘들고 외로울 순간이 오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가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부모는 뭐든 해주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정적이다.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지, 무엇을 더 챙겨줘야 할지 정답은 늘 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면, 적어도 아이의 마음속에 버틸 수 있는 기억을 남겨주자고.


혼자 살아내는 방법,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말로 다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는 힘은
언젠가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지도 모른다. 부모로서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따뜻한 기억이다.


어디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장소 하나를 아이에게 남겨주는 것. 그래서 오늘도 어색하지만 사진을 찍는다. 지금은 무심한 얼굴일지라도 언젠가 이 장면을 펼쳐볼 날을 믿으면서.



“기억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또 하나의 집이다.”

_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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