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말 한마디
여행의 밤은 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여행하는 동안 보고, 걷고, 웃었던 장면들이 음식 냄새와 함께 천천히 풀려 나온다.
괌에서의 저녁 시간, 우리는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는지, 그리고 어떤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는지를.
이번 여행은 유난히 달랐다. 늘 내가 계획을 맡아왔던 여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일이 겹치며 여유가 없었다.
대신 신랑이 모든 일정을 맡았다. 돌고래 쇼, 달빛 축제, 렌터카와 숙소, 비행기표, 맛집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조금 불안했다.
‘과연 괜찮을까?’
‘내가 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막상 여행이 시작되자, 그 불안은 금세 사라졌다.
생각보다 훨씬 차분했고, 설명은 친절했으며, 무엇보다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계획했다면 바쁨과 예민함이 섞여 짜증이 먼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부드러웠다.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고마움을 전했다.
“이번 여행 정말 좋았어. 고생 많았어.”
그 말에 신랑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짜증 내고 혼냈으면, 두 번 다시는 여행 안 가려고 했지.
그런데 잘했다고 하네.”
콧웃음을 섞은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마도 그 말속에는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솔직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가장 정확한 거울이 된다.”
_ 미셸 드 몽테뉴
나는 그 순간, 신랑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쁠 때의 말투, 예민할 때의 표정, 무심코 던졌던 말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너무 편하게 대했던 태도들. 다정하고 배려 깊은 사람을 옆에 두고, 나는 그 다정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사랑을 감정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오래 함께 살아보니, 사랑은 성격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대하는 말의 온도, 기다려주는 속도, 설명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쌓여 관계의 결을 만든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가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_에리히 프롬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조금 더 천천히 말하자고.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자고.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고.
여행이 끝나도, 그 한마디는 오래 남는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고,
사건이 아니라 말 한마디라는 사실을 다시 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