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돌아오는 연습

by 민쌤


나에게 돌아오는 연습




나이가 들수록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예전에는 늘 밖을 향해 있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혹시 불편을 주지는 않았는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기준은 늘 타인이었다. 이제는 그 시선이 조금씩 안으로 향한다. 타인에게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제일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나에게 되뇌며 살아간다. 이 다짐은 이기심이 아니라,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에 가깝다.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늘 나보다 타인에게 더 집중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배려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나를 먼저 챙긴다’는 말이 어색했고, 때로는 죄책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돌보는 일은 늘 뒤로 미뤄졌고, 타인을 향한 배려는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오랫동안 나는 친구 없이, 사람들 없이 지냈다. 그러다 약 10년 전부터 조금씩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동반했다. 좋은 날도 있었고, 마음이 벅차오르던 순간도 있었다. 동시에 오해와 상처, 슬픔과 실망이 반복되었다. 관계는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흔들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어느새 나를 잃어버렸다. 상대의 감정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나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싫다는 말 대신 웃음을 선택했고, 상처받아도 이해하려 애썼다.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점점 흐릿해졌다.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배려가 오히려 나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거리 두기였다. 혼자가 되자 처음에는 불안했고,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밀려왔고, 외로움도 따라왔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이 아팠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마주하게 되었다.


혼자가 되면서 나는 다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무리하지 않는 것, 억지로 웃지 않는 것, 불편한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일이었다. 예전의 나는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이제는 ‘이건 내가 아프다’라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평생 지속될 로맨스의 시작이다.”
_오스카 와일드


이 문장을 이제야 이해한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단번에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매일 연습해야 하는 태도다. 타인을 향해 기울어 있던 마음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로 조금씩 돌리는 일이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보다 내일,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먼저 생각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다만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나를 지운 채 이어가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지킨 상태로 마주하는 관계를 선택하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외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희생시키며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타인을 배려하되,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삶. 관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돌아오는 연습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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