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식 날의 추억

by 민쌤

성인식 날의 추억



성인식이 있던 날의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스무 살 무렵이었다는 것만 또렷하다. 그때의 나는 대학생이라기보다 생활인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옆집 금방에 좀 다녀오자.”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따라갔다. 금은방의 유리 진열장 안에는 작은 반지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엄마는 이미 마음에 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하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껴봐.”


14k의 작은 링반지였다. 검지에 끼워보니 신기할 만큼 딱 맞았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에게 받은 반지였다.


우리 가족은 생일이나 기념일을 크게 챙기는 집이 아니었다. 선물이라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반지는 나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어떤 사건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반지를 건네주던 순간, 옅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표정은 참 묘했다. 쑥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늘 식당 일을 하던 엄마였다.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하루 대부분을 불 앞에서 보내면서도 집에 오면 우리 밥부터 챙기던 사람이었다. 살림은 늘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엄마가 늘 자신의 몫을 먼저 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큰소리를 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다정했고, 조용했고, 그리고 늘 우리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반지는 더 특별했다. 어쩌면 엄마가 나에게 건넨 말없는 응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그 반지를 빼지 않았다. 마치 약속처럼, 습관처럼, 혹은 부적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손가락 굵기가 변해 몇 번이나 사이즈를 늘려야 했다. 금은방에서 반지를 맡길 때마다 잠시라도 손가락이 비어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무엇인가 나를 지켜주던 것이 잠깐 사라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반지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수호신 같은 물건이 되었다. 세상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에서 진짜 보물이 되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기억이다. 어떤 순간, 어떤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게 그 반지는 엄마의 시간이다. 엄마의 손. 엄마의 미소.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그날 금은방에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만은 여전히 또렷하다. 살다 보면 문득 그 반지를 만지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힘들 때도 있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엄마가 준 그 작은 반지 하나로 긴 인생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물건이 한 사람의 삶을 지켜주는 보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말로 남지 않고 물건 속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 반지를 오래 간직하려 한다. 엄마에게 미안했던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함께 담아서. 내 젊은 날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보물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은 값비싼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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