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어린 왕자

by 민쌤



마음속 어린 왕자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문득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고,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 아이의 삶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작은 키에 파마머리, 뽀얀 얼굴. 딱 보는 순간 ‘어린 왕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글도 또박또박 읽지 못하던 일곱 살 아이. 하지만 그 아이의 하루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린이 버스에서 혼자 내리고, 공부방에 와서 공부를 하고,
태권도를 다녀오고, 분식집에서 저녁까지 해결하는 하루.
그 작은 몸으로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끔 버스 정류장에 나가 아이를 데리러 가고, 분식집까지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의 마음으로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아이를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중한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무너졌다. 내 진심이 거절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괜한 일을 한 걸까…”

서운함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부모님의 선택은 아이를 위한 가장 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를 얼마나 믿고 있었을까?’

혹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가능성을 대신 살아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를 돕는다는 것은 아이를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 아이는 늘 씩씩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단단했다.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냈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배웠다. 부지런함을, 책임감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란다.”
– 칼 융

그 아이와 함께한 3년의 시간은 나에게 가르침이 아닌 배움의 시간이었다. 나는 선생님이었지만 그 아이는 나의 스승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훌쩍 자라 버린 아이.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


“사랑이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한다.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기다려야 하는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어린 왕자가 내게 남겨준 것. 아이를 믿는 마음, 그리고 기다리는 용기.


PS.
OO야, 잘 지내고 있지?

얼마 전 축구복을 입고 지나가던 너를 봤어.
정말 많이 컸더라.

여전히 씩씩한 모습이 참 좋았어.

선생님은 아직도
네가 웃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

너와 함께했던 시간,
정말 고마웠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멋지게 자라주길 바란다.

늘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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