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으로 버틴 시간들

by 민쌤

괜찮은 척으로 버틴 시간들

괜찮은 척 살아도 된다고 믿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지쳐도 멈추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았다.


괜찮은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루를 견뎌냈다. 일에서도 그랬고, 관계에서도 그랬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웃었고, 상처가 되어도 아닌 척 넘겼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꾹 눌렀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고, 그게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괜찮은 척은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이미 곯아가고 있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이유 없이 몸이 무거워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 오던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았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제 좀 쉬어도 된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라
잠깐의 휴식과 지친 몸을 채워줄 작은 회복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느라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자책 또한 필요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고,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종종 지나온 나를 너무 쉽게 비난한다. 하지만 그 시간 속의 나는 분명 나름의 이유와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는 타인보다 나를 먼저 챙기기로. 타인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는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기로. 괜찮은 척을 하기보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연습해 보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멈춰도 괜찮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나를 지키지 못하면 어떤 관계도 오래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나를 돌보는 일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려 한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 괜찮아지기 위한 삶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_오드리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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