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사람을 잘 사귀는 편이 아니었다. 필요한 관계만 유지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삶이 익숙했다. 서울에서의 삶은 그랬다.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 가끔 이어지는 회식 자리, 그리고 오래된 몇몇 친구들과의 만남이 전부였다. 하지만 경북으로 이사 온 이후,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훨씬 가까웠다.
옆집 사람의 일상,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 서로의 삶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환경 속에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관계들 속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관심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관계들 속에 조금씩 나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보냈다. 좋은 인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떤 관계에서도 단 한 번도 ‘거절’이라는 선택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상대의 말이 불편해도 웃으며 넘겼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오해를 풀 기회가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조용히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먼저 사과했고, 내 마음을 접고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선택들은 결국 나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소홀히 대했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친절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욕심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고, 끝까지 나를 지키지 못했다.
상처를 겪고,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참고 있었을까. 왜 단 한 번도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무심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타인에게 향하던 친절을 조금은 나에게도 나누어 주는 것. 거절해야 할 순간에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망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 한다.
혼자 걷고, 생각을 정리하고, 조용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고, 나와 가까워지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조금 더 나에게 친절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_루이스 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