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

올 여름이 보다 특별한 이유

by Min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여름에는 내 생일이 있고, 여름생이라 그런지 추위보다는 더위에 강하며, 무엇보다 바다 위에서 배영으로 둥둥 떠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 초록색 계열은 다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초록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계절도 단연 여름이다. 그런 나인데, 바리스타로 일하던 시절 가장 바쁜 시즌이 여름, 겨울이었기에 휴가는 항상 간절기였다. 어떤 때는 정신 차리고 보면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해도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돼, 한숨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굳이 봄의 끝에 퇴사를 한 이유는 '여름이 온다'부터 '여름이다', '여름이 간다'까지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였다. 더워서 땀이 주룩 흘러도, 숨이 턱하고 막혀도 그게 그렇게 반갑다, 2024년 여름.




그간 못했던 야외 활동을 굶주린 육식동물처럼 하고 있다. 영화를 봐도 굳이 야외 상영 이벤트를 찾는다. 까무잡잡해진 피부가 하얗게 돌아가기 전에 주기적으로 물놀이를 다녀온다. 덕분에 여전히 새까맣고 나름 좋았던 피부에 주근깨도 조금씩 올라오는데 왜 오히려 좋을까? 아, 더워서 50도까지 올라간다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기 위해 스페인어도 배우고 있다. 스페인어 생활자셨던 선생님은 '뜨거운 맛을 한 번 봐야 그런 말이 쏙 들어갈 텐데.'하신다. 여름에 사무친 내 마음을 아신다면 그 말씀이 오히려 쏙 들어갈 것이다. 초록색 등산 가방을 마련하고 빨빨거리면서 바지런히 걸어 다니는 내가 좋다. 얼마나 초록이 사무쳤던 거야, 땅을 얻어 텃밭도 하고 있다. 며칠만 지나도 작은 숲처럼 자라버리는 여름상추나 감자를 보며,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 또한 살아 있음을 느끼며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바빠서 포기했다기에는 어쩌면 변명이었을 수도?'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충분히 짬 내서할 수도 있었을 포기한 많은 것들. 부담이야 됐겠지만 불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은 담담한 생각들이 잠깐이나마 나를 진정시킨다. 그렇다면 과감한 쉼표를 통해 진정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행동반경이 줄어드는 행위인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의 이 쉼을 글로 써보는 건 어떨까. 하루하루 생각도 마음도 요동치는 지금이 내가 나를 찾을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가끔은 훌쩍 떠나는 행위에서 느낀 어떤 것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읽을거리는 새로운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것들을 읽어내고 비워내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남겼을 때 내 집도,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잃어버린 취향을 찾는 여정이라고 명명한다. 무모하고 어이없고 완전히 좌충우돌이어도 불쑥 튀어나오는 영감이 더없이 반갑겠다. 여름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결국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빼곡하게 쌓인 올해의 가을과 겨울은 이전과는 미묘하게 좀 다른 모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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