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한 걸음 더 쓰는 것에 가까워지다

by Min

대학교 때 '문화지'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였다. 연극, 영화를 보거나 전시에 다녀오면 그 티켓을 손수 딱풀로 붙이고 내 감상을 손글씨로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블로그는 있었으나 그냥 손으로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낭만이었다. 마치 즉석 증명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고 나온 즉시 글을 썼다. 내가 느낀 모든 것을 담아내느라 마음이 급했다. 식사라도 하면 그 기억이 흐려질까 봐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와 함께 악착같이 그러나 즐기면서 그렇게 써 내렸다. 기록하고 싶어 안달 난 그런 시기였다. 20대 초반, 꾸준히 쓴 '문화지'는 두꺼운 노트로 세네 권 정도 되었을 것이다.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하던가. 첫 직장에 취업 후 서울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방을 비운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이 몽땅 녀석들을 버렸다. 전화로 그 소식을 듣고 울고불고하였으나, 이미 내 소중한 녀석들은 파쇄공장으로 떠난 뒤였다. 그 뒤로 그렇게 열심히는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문화지에 대한 부재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오래 쓴 시절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본가에 올 때면 가끔 들여다보며 애지중지했을 내 20대 초반의 흔적은 원래 쓴 적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2024년은 내게 쉼표의 해이다. 퇴사 후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쉼을 위한 해라 쉼표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가지 의미가 더해졌다. 문화지가 버려진 이후 '쓰기'라는 것에 마침표를 찍은 내가 그 마침표를 쉼표로 고쳐 쓴 것이다. 쉬는 기간 동안 생소한 무엇을 배워보자 하여 시작한 스페인어 수업. 그 첫 수업에서 나는 현재 쉬고 있다고, 그간 못해본 것들 다 해보겠다고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오, 그럼 그 쉼의 내용을 책으로 써보는 건 어때요?" 하셨다. '책을 쓴다고? 난 이제 글 같은 거는 짤막하게는 몰라도 꾸준히는 안 쓸건데.' '근데 갑자기 자기소개 이후 웬 책? 무슨 소리 하시는 거야.'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와서 오래된 블로그를 슬쩍 열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인데, 짧은 에세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홀린 듯이 쓰기 캠프를 신청하였다.


그래서 여름이 갔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즈음에는 내 책이 한 권 나온다. 작가 소개에도 썼지만 앞으로도 쭉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잃어버린 취향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많이 읽고, 보고 하였는데 뜬금없이 중요한 마음속 한 조각을 찾은 것이다. 내가 잃어버렸던 한 조각은 다시 꾸준히 그리고 오래 쓰고 싶다는 꽤 중요한 취향이었다.


무슨 의도로 내게 써보라는 말을, 책을 내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30대 초반에 쉼이라니 쉬운 결정은 아니므로 많이 읽는다는 본인의 취향을 담아 건네 본 가벼운 인사치레였을 수도. 그러나 내게 정말 필요했던 말이었나 보다. 정리전문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6개월 이상 만지지 않은 물건은 집에서도 마음에서도 치워버리라고. 문화지의 부재는 6개월이 뭐야, 6년도 더 되었지만 이제야 치울 수 있게 되었다. 무심코 문화지를 버렸던 부모님이, 내 문화지의 서사를 아는 가까운 벗이 글을 써보라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유튜브 속 정리전문가처럼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제3의 인물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줌으로써 나는 쓸 수 있게 되었다. 영원한 건 없다던가. 그런 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이제는 시절인연이 된 나의 문화지를 떠나보내며, 앞으로는 변해버린 모든 것에 의연할 수 있는 나날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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