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53쪽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1쪽
저희 도서관은 고인들의 기억과 행동 패턴을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서 저장합니다. 그건 단지 텍스트나 이미지, 동영상과 같은 쉽게 분석 가능한 데이터와는 달라요. 마인드는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매우 막대하고도 깊이 있는 정보의 모음이죠. 수십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구현된 결과물입니다.
- '관내분실' 232-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