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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 유토피아는 있을까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by 옥돌의 책 글 여행


코비드(COVID-19)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온택트 시대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코비드와 함께 세 번째 봄을 맞이하며 온라인 속 가상공간이 이제 오프라인 공간보다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미 예견되었던 세상의 변화를 코비드-19가 앞당겼을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망망대해, 거센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는 느낌이다. 앞으로 세상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까.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을 읽으며, 상상이 빛의 속도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이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를 받았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 책에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 7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53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주인공 데이지는 지구 밖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지구 밖 '마을'은 차별도, 배제도, 고통도 없는 유토피아의 세상이다. 데이지는 이 마을이 유토피아라면, 지구로 간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결국 유토피아란 차별도, 배제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 안에서 고통마저 감내해 낼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라고 깨닫는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1쪽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과학자 안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안나는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에 먼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에 남편과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뒤따라가지 못하고 우주선 운항이 중지된다.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에 가기 위해 그녀는 100년 넘게 우주 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린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우주 끝까지 개척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면 과학의 발달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추하게 한다.



저희 도서관은 고인들의 기억과 행동 패턴을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서 저장합니다. 그건 단지 텍스트나 이미지, 동영상과 같은 쉽게 분석 가능한 데이터와는 달라요. 마인드는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매우 막대하고도 깊이 있는 정보의 모음이죠. 수십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구현된 결과물입니다.
- '관내분실' 232-233쪽



'관내분실'의 주인공 지민은 망자인 엄마의 영혼을 만나러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은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해서 '마인드'를 수집해 보관한다.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저장해놓은 도서관에서 마인드와 접속하면 망자의 영혼을 만나거나 추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마음을 뒤늦게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영혼과의 만남이 의미 있어 보인다. 코비드-19 이후 장례문화도 간소화되는 추세다. 이제 현실적인 변화를 뛰어넘어 상상 이상의 장례 문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SF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의 이야기가 풍부한 상상력과 짜임새 있게 완성되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인간이 꿈꾸고 상상하는 대로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인류의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순례자일까. 이제 인공지능 시대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로봇과 함께 하는 일상도 머지않았다. 행성과 우주로 세계가 확장되고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저장해 영혼과 만나는 이야기도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 유토피아는 있을까.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이 두렵거나 궁금하다면 미래의 가상현실을 이 책으로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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