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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21. 2022

그는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성석제, <투명인간>, 창비, 2014



그는 내 존 재를 몰랐다. 지나는 시선으로라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래 봐야 내가 걸치고 있는 복장과 장비밖에는 볼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의 나이는 쉰 살이 넘어 보였으나 막 산골에서 걸어 내려온 소년 같은 인상이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알았다. 그것도 아주 잘, 속속들이, 머리부터 뱃속, 발끝까지. 뇌리에서 '김만수'라는 이름이 야구장 전광칸 1번 타자 이름처럼 번쩍 떠올랐다. 전광판을 장식하는 불꽃이 싸리비처럼 옆에 솟구쳤다가 스러졌다.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p.11)



쉰 살 넘어 보이는 한 남자가 한강 다리 난간 위에 서 있다. 왜 그곳에 서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 들어서도 산골 소년 같은 인상,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평범하고 착해빠진 얼굴이다. 내 주변에도 있음 직한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자매이고 아버지이기도 한, <투명인간> 책 속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김만수'다. 어쩌다 그는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현실 속 있을 법한 남자 '만수'를 둘러싼 대가족의 서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투명인간>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는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문학사상 <유리 닦는 사람>으로 등단했다.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 중단편 소설집과 짧은 소설을 모은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펴냈고, 장편소설로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등의 작품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만수가 태어날 때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만수는 머리가 유난히 컸다. 나는 스무 살 때 결혼을 해 이듬해에 맏아들을 낳았고, 세 해 터울로 두 딸을 낳았다. 애를 셋쯤 낳아보면 태어날 아기가 배속에 있을 때 어떤 앤지 대충은 짐작이라도 하는 법이다. 그런데 만수는 하도 커서 쌍둥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결국 무지막지한 산통 끝에 배 속에서 나올 때 머리통이 수세미처럼 길쭉하게 늘어져서 나왔다. 여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하는 중에 시어머니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뭔 아가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고 저카나. 저기 지대로 커서 인간이 될랑가 걱정이구마."
(p.11-12)



김만수, 그는 개운리 골짜기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똑똑한 할아버지와 못 배운 아버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가장 모자란 듯하지만 순박하고 착하다. 만수네 가족은 60~70년대 시골생활을 거쳐 80~90년대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고뇌와 좌절을 맛본다. 주변 인물들의 삶 또한 녹록지 않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담아, 마치 거울처럼 우리네 삶이 그 안에 들여다보인다. 짠내 나는 서민 드라마 한 편을 긴 호흡으로 읽는 듯하다.



- 근데요, 형님, 전 정말 형님이 이렇게까지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요. 그놈들한테 왜 빚까지 내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돈을 물어준 겁니까? 힘 있고 돈 있고 법까지 제 편인 개새끼들한테 계속 갈굼을 당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예요?
만수 형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 내가 우리 일곱 명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책임을 질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게 올바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무식해서 정치도 모르고 법 같은 건 잘 몰라도 정의기 뭔지는 알아. 아,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게 그냥 느껴지더라고.
(p.302)



제대로 커서 사람 노릇할는지, 할머니의 걱정을 샀던 만수는 착하고 성실하게 그럭저럭 잘 자라 어른이 된다. 서울살이에 어쩌다 가장이 되어버린 만수의 고난과 역경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이겨낸 끝에 자동차 부품회사에 안착한다. 뒤늦게 가정도 꾸리고 숨 쉬고 살만하니 회사는 시류에서 도태되고 경영난에 빠진다. 결국 회사를 지키려다 불법 점거로 소송에 휘말리고 빚을 떠안는다. 




자동화에 따른 합병, 인원감축, 정리해고 등의 이슈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급격한 경제발전 속에 뒤처지고 소외된 노동자들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다는  안타깝다. 삼대에 걸쳐 근현대사의 역사적 흐름 속에 '투명인간'으로 소외되어버린  만수네 가족 이야기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빈익빈 부익부로 양극화되는 시대,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우리는, 끝까지 투명인간이 되지 않고 이 사회에서 건재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투명인간이 된 만수의 이야기가 씁쓸하게 한다.



- 어떤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는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우리처럼 한가족이 전부 투명인간인 걸로 봐서는 유전적인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아, 따로 떨어져 사는 여동생이나 엄마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또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집사람이 투명인간이 된 거 보면 일단 한가족끼리 모여 산다는 게 중요한 거 같다.
- 같이 사는 환경이 결정적이다?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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