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어크로스, 2017
괴짜 같은 철학자들도 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꿈꾸며, 괴팍한 부모 때문에 고민한다. 때로는 변화를 꿈꾸기도 한다. 내 가슴속 고민을 철학자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라. 짝사랑에 마음 태운다면, 키르케고르가 어떻게 연애했는지 알아보자. 교회 나가라고 들들 볶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벌컥거린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라.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 그래! 이건 내 고민과 똑같아!"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나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p.9-10)
젊은 시절 마니교에 빠져 방황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자로 세속적인 성공과 쾌락을 겪어 본 사람이다.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어머니의 간절한 설득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젊은 시절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가장 뛰어난 이론적 수호자가 된다. 당시 기독교는 박해와 고통, 탄압 속에서 313년, 믿음의 자유를 얻지만 이교도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가 다른 종교에 맞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이론을 세우고 기독교 신앙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또한 철학자로서 '내게는 나 자신이 문제일 뿐'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의 사상의 출발점은 항상 자신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에 있었다.
학창 시절, 말이 없는 토마스를 친구들이 '시칠리아의 벙어리 황소'라고 놀려 댔다. 토마스를 지진아로 불쌍히 여긴 친구가 가정교사를 자원했는데, 선생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토마스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는데, 자신의 지혜가 드러나면 친구들이 모여들어 공부와 사유를 방해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 훗날 학자들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 겸손한 마음을 이겼다'라는 말로 이 사건을 평가한다. 토마스는 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증명했으며, 맹목으로 흐르기 쉬운 신앙에 대해 이성적 사유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원해서(?) 실연을 당했고, 이름난 작가가 되었다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과 끊임없는 논쟁에 휘말리면서 과로로 쓰러져 사망했음’, 키르케고르의 삶이다. 그는 엄청난 도덕적 갈등과 번뇌와 끝없는 자기반성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 자신의 집안 내력과 방탕했던 과거로 볼 때 순결하고 명랑한 약혼녀 올센과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피나는 노력 끝에’ 파혼에 이른다. 키르케고르는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라고 외쳤다. 이는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신이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을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