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18. 2022

인간의 참된 행복의 원천, '자유'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018


자유의 가치는 언제 가장 빛을 발할까?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가 아닐까. 위드with 코로나 시대 국민 대다수가 자가격리를 경험했다. 나 또한 두 명 중 한 명은 오미크론으로 확진되 3월에 7일간의 자가격리 대열에 합류다. 문자 통보와 함께 우리 집  에 갇혀 지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최근에 읽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자기 보호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통제를 받은 것이다. 150년 전에 쓰인 책 속의 '자유 원리'가  현대인의 삶에도 무리 없이 적용되는 걸 보면 고전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공리주의 철학자로 이름난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식의 교육을 받았다. 이후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은 그는 아버지의 철학에 반기를 들었고, 균형 유지를 위해 음악, 시, 미술 등 관심 폭을 확장했다. 10대의 나이에 공리주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을 도와 <법적 증거의 합리적 근거>(전 5권)를 만들며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논리학 체계> <정치경제학 원리> <대의정부론>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자유 원리


밀은 간단명료하게 자유 원리를 정의한다.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일 때'를 제외하고는 자유를 침해할 수 없고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원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연하지 않는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p.35-36)



 

자유의 기본 영역


밀은 자유의 기본 영역을 크게 세 부분으로 정의한다. '내면적 의식의 영역', '기호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그것이다. 어떤 정부 형태든 이 세 가지 자유가 원칙적으로 존중될 때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유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누릴 수 있을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내면적 의식의 영역 : 이것은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 도덕. 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절대적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
2) 기호의 자유 :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
3) 결사의 자유 :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p.40-41)





'자유'란 외부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처럼 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나는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자유롭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 개운치 않은 감정의 실체는 뭘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자유'에 미치는 영향력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호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내 안의 나와 끊임없이 협상하며 자본가의 돈과 맞바꾼다. 내 시간과 감정을 ''에 저당 잡히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줄기 희망을 갖는 이유는 150년 전에도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자유의 범위가 확대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의 원천, '자유'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의 메시지처럼 개별성과 사회성의 속에 피울 날을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철(哲) 좀 들어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