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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28. 2022

'아홉 켤레의 구두'에 담긴 현대인의 자화상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문학과 지성사, 2019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도시 문명의 그늘 속에서 좌절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뿌리 뽑힌 사람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삶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계층,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를 명백히 보여주며, 현실 혹은 삶에 있어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의 부정적 측면들을 암시하여 어둠 속의 진실을 밝히려 하고 있다. 윤흥길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의 적절한 조화', '작품 배경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우리들의 현실과 삶 속에 자리 잡은 시대의 아픔을 내포한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복역 후 출감하여 가족과 함께 집도 없이 떠돌다가 '오선생'의 집에 세를 들어오는 '권씨'의 이야기다. 작중 화자인 '오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오선생 부부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무리를 해서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셋방을 내놓는다. 그 방에 들어오기로 한 권씨네 가족은 예고 없이 사흘이나 앞당겨 이사 온다. '오선생'은 학교로 찾아온 이순경을 통하여 '권씨'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부담스러워한다. 과거의 셋방살이 시절을 떠올리며 너그러운 주인이 되리라 마음먹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문간방에 세 들어온 권씨네 가족은 기본적인 약속마저 어긴 채 별 의식 없이 살고 있다. 출판사에 다니는 '권씨'는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구두를 여러 켤레 가지고 있으며 구두에 자존심을 건 사람처럼 윤이 나게 닦아 신는다. 그러던 그가 실직을 했다는 사실을 이순경을 통해 듣는다. '오선생'은 가정방문을 하던 중 공사판에서 막노동 일을 하는 '권씨'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러나 '권씨'는 '오선생'이 자신을 미행했다고 의심하는 눈치를 보인다. 저녁이 되어 술에 취해 돌아온 '권씨'는 '오선생'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권씨'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20평짜리 택지의 입주권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그 땅에 집을 짓지 않으면 불하를 취소한다는 통지가 나온다. 그러자 '권씨'는 또다시 무리를 해서 집을 짓고 곧이어 각종 고지서가 날아든다. 이러한 당국의 정책에 초주검 꼴이 된 많은 입주자들은 시정 대책위원회를 조직한다. '권씨'는 타의에 의해 대책위원과 투쟁위원을 역임하지만 자신은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불참한다. 입주자들의 대규모 집단시위가 일어나고 '권씨'는 군중들을 해 달아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검문하는 청년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한 청년과 새로운 광경을 목격한 '권씨'는 군중 속에서 무시무시한 절실함을 느낀다. 순간 '권씨'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시위대의 주동자가 되어 싸운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어 실형을 받는다. 그 후 '권씨'는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된다.



'권씨'의 실직 상태가 지속되고, 부인이 난산 끝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권씨'는 '오선생'을 찾아와 지금 10만 원을 빌려줄 것을 부탁하지만 '오선생'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을 피하기 위해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오선생'은 마음을 바꿔 어렵게 병원비를 마련하여 '권 씨' 대신 병원의 산모를 지켜준다. 그날 밤 강도 흉내를 낸 '권씨'가 안방에 침입한다. 그의 어리숙한 행동에 눈치를 챈 '오선생'은 모르는 척하며 빈정거리고, 강도는 자존심이 상한 모습으로 집을 나간다. 그 후 '권씨'는 행방불명이 되고 그의 방에는 아홉 켤레의 구두만이 남아 있다. '오선생'은 구두 한 켤레만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위의 줄거리에서도 부각되듯이 '권씨'와 '오선생',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각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관계는 '오선생'이 떠올리는 '찰스 램과 찰스 디킨즈'의 관계와 유사하다. '찰스 램과 찰스 디킨즈'는 공통점이 많다. 이름이 같다는 것과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점이 그렇고, 문학 작품을 통해 빈민가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쏟은 점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성이 각각이듯이 작품을 떠난 실생활에서의 그들은 성격이 딴 판이다. '램'은 정신 분열증으로 자기 친모를 살해한 누이를 돌보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보내는 동안 글과 인간의 일치된 삶을 산 반면 '디킨즈'는 독학으로 성장하여 훗날 문명을 떨치고 유족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구걸하는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권씨'의 현실이나 상황에 대한 의식의 변모과정은 '찰스 램'적인 생활 방식에 접근하려는 가능성을 엿보인다. '권씨'의 본래 모습은 불만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기껏 꿈속에서나 해결할 뿐이지 행동으로는 나타낼 줄 몰랐을 정도로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러던 그가 시민들과 대규모 집단 시위에서 일종의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현실에 저항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오선생'에게 얘기하는 다음 인용문에서 그의 의식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자와 악인은 종이 한 장 차이랍니다. 악인이 욕망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성자는 그것을 꿈으로 대신하는 것에 불과하답니다."(p.80)



그 후 '권씨'는 대학까지 졸업한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삶은 학력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노동을 한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변모한 '권씨'가 겪는 세상의 어려움은 '악은 항상 새로운 악을 낳는다'는 악의 순환논리와도 같이 더욱 증가된다. 그러나 '권씨' 자신의 의식 속의 현실과 실재하는 현실은 약간 동떨어진 면도 보인다. 그것은 그가 '안동 권씨'이며 '대학 출신'임을 내세운다든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구두들을 윤이 나게 닦아 번갈아 신는다는 데서 나타난다. 아홉 켤레의 구두는 실재하는 현실과 무관한 헛된 자존심을 한 형태로써 보여주며 현실 생활에 대한 공허한 저항이기도 하다.



"가장 값나가는 세간의 자격으로 장롱 따위가 자리 잡고 있을 꼭 그런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받은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닦인 것이 여섯 켤레, 그리고 먼지를 덮어쓴 게 세 켤레였다. 모두 해서 열 켤레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일곱 켤레를 골라 한꺼번에 손질을 해서 매일매일 갈아 신을 한 주일의 소용에 당해 온 모양이었다. 잘 닦아진 일곱 중에서 비어 있는 하나를 생각하던 중 나는 한 켤레의 그 구두가 그렇게 쉽사리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딸딸하게 깨달았다."(p.97)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헛된 자존심의 한 형태로 묘사되는 아홉 켤레의 구두를 '권씨'가 버리고 나가버림으로써 그의 새로운 의식의 변화가 암시되는 것이다. '오선생'은 이론상으로 '찰스 램'적인 생활방식을 따르지만 행동은 '찰스 디킨즈'적인 생활방식에 가깝다는 것을 떳떳이 부인하지 못한다. 다수의 사람들처럼 그 또한 정부가 베푸는 제반 시혜가 사회의 밑바닥에까지 고루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가난한 자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외면하지 않는 휴머니스트가 되려 하지만 '디킨즈'적인 이론에 머물고 만다. '권씨'가 세를 들어왔을 때 '오선생'에게 있어서 '권씨'는 부담스럽고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차라리 듬뿍 사례금을 얹어 다른 누구에게 대신 그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권씨'가 실직을 하고 부인이 난산을 하는 등 악운이 겹치자 '오선생'의 마음이 그에게 쏠리지만 '찰스 램'적인 진정한 사랑인지  '찰스 디킨즈'적인 값싼 동정인지 알 수 없다.




'권씨'와 '오선생'은 둘 다 대학 출신이며 내세울만한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에 쪼들려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데까지 유사점을 보이지만 '오선생'은 단계적으로 어려운 삶을 극복해 나가는 편이고, '권씨'는 부딪혀 오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상황 인식의 눈을 뜬다. 그렇다고 해서 '권씨'와 '오선생'의 서로  다른 시각을 '찰스 램과 찰스 디킨즈'의 틀에 끼워 넣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수용 능력과 적응 능력이 다르듯 의식의 편차는 양분법으로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관계와 갈등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고 묵어있는 기회주의적인 습성을 뿌리째 뽑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찰스 램'의 진실한 사랑을 배워 우리들의 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대학 졸업 문집 제출용으로 썼던 서평을 긴 세월이 흐른 오늘 불현듯 떠올라 꺼내 읽었다. 20대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며 썼던 글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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