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살림, 2019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49쪽)
"아버지는 영영 가버렸나 봐."
카야는 하얗게 핏기가 가시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떠났을 때의 아픔과는 또 달랐다. 솔직히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려면 애를 써야 했다. 그래도 이제 진짜 외톨이라는 느낌은 막막하다 못해 윙윙 메아리쳤다. 정부에서 알게 되면 데리러 올 텐데. 아버지가 아직도 있는 척, 점핑한테도 거짓말을 해야 했다. (.......)
남들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카야는 촛불이나 달빛에 의지해 깊은 밤에 홍합을 땄다. 은은히 빛나는 모래밭에서 카야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홍합뿐 아니라 굴도 따고, 첫새벽이 밝자마자 일착으로 점핑에게 가려고 골짜기 근처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97-100쪽)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295-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