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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Dec 05. 2022

칼을 쥔 여자

김애란 단편소설, <칼자국>, (주)창비, 2018



추운 겨울이면 따끈국물이 생각난다. 즐겨 먹던 바지락 칼국수가 머릿속을 맴돈다.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쫄깃한 면발에 빨갛게 양념 범벅이 된 겉절이 김치를 입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그러는 사이 그릇에 수북이 담긴 바지락을 가져와 알맹이만 골라낸다. 추임새를 넣듯 중간중간 두 손으로 그릇을 감싸고 후루룩, 국물을 들이켠다. 칼칼하고 달달한 바다 내음이 국물과 함께 혈관을 타고 온몸에 스며든다. 충족감이 차오르며 그제야 떠오른. 김애란의 단편소설 <칼자국>(창비, 2018)에 등장하는 칼국수와 김치가 입맛을 돋워 발걸음을 한 것이다. 주인공은 칼을 쥔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칼국수와 함께 "내 컴컴한 아가리 속으로 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p.15)을 회상한다.




김애란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3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다. 지은 책으로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등이 있다.



<칼자국>은 이십여 년간 시골에서 국수를 팔며 주인공 '나'를 키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는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다. 긴 세월, 자루는 몇 번 바뀌었으나 칼날은 그대로인 칼을 쥐고 오랜 시간 칼국수를 팔아 자식을 키웠다. 어머니는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았다. 말수 적어 착한 사위 소리 듣던 아버지는 거절을 못 하는 좀 난감한 사람이었다. 칼 잘 쓰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못 자르는 게 있는데 그것은 단 하나 부부의 연(緣)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가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나' 서둘러 내려간다.   


문득, 자취를 하며 사소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어머니에게 전화 건 기억이 났다. (...)
  어머니는 깔깔대며 그제야 상세한 조리법을 알려 줬다. 나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정박아처럼 굴었다. 어머니는 내게 질문받는 걸 좋아했다. 나는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 이따금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사 준 칼을 쥐고서였다. 좋은 칼 하나라던가 프라이팬 같은 것이 여자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p.61-62)


주인공 '나'는 서울에서 대학다니기 위해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 어머니에게 당연시하며 받아왔 것들을 돌아보며 사랑과 희생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안에서 벗어난 딸에게 질문받는 걸 좋아하는 어머니의 소박한 애정과 관심을 상기한다.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가 마트에서 골라준 좋은 칼을 쥐고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p.62) 어머니가 느꼈을 기쁨의 의미를 깨닫는다.




소설가 김애란은 단편소설 <칼자국>, 긴 세월 칼과 도마를 놓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나'의 어머니이자,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자신의 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아낸 과정 담담하게 전한다. 제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명예에 걸맞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매력적인 일러스트를 더해,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도 돋보인다. 끝으로, 어머니가 그립거나 추억을 상기하고 싶은 20대 이후의 독립했거나 결혼한 딸들에게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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