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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24. 2023

외계인이 바라본 가상의 인류학 보고서

이경덕,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사계절, 2013



별들 사이로 태양의 위협이 도사리고, 번갯불 사이에 달의 침울한 분노가 서렸다. 별들은 전쟁에 시달리고 신은 싸움을 부추겼다. 태양이 있던 자리에 기다란 화염이 반란을 일으켜 나타나고, 달에서는 뿔이 두 개 뻗어 나오더니 궤도를 잃어버렸다. (.......) 별자리들도 궤도를 벗어나 사라졌다. (.......) 하늘이 스스로 몸을 흔들어 싸우는 별들을 쓰러뜨렸다. 별들이 아래로 떨어지자 대지가 불타고 바닷물은 이들을 급히 삼켰다. 그 뒤로 하늘에는 별이 나타나지 않았다.(p.12)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는 지구인이 알아야 할 인류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외계인들이 인류의 문화를 살펴보고 보고서를 만든다면?'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과학 문명은 발달했지만 다툼과 전쟁에 시달리며 위기감을 느낀 아름다운 '고리'의 행성인들이 멋진 지구를 발견한다. 과학자들이 지구로 이주할 수 있도록 우주선을 만들며, 지구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선발대를 지구에 파견한다. 이들은 지구인의 다양한 모습과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의 자료를 토대로 한 권의 보고서를 만든다. 외계인이 바라본 가상의 인류학 보고서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성으로 인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신화와 의례, 종교 문화, 아시아 문화 등을 공부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 등이 있고,  번역서로 <고민하는 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등이 있다.  



우리는 지구의 인류학자들이 작성한 자료를 토대로 지구인을 연구했다. 인류학은 지구인의 다양한 모습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지구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우리에게 참으로 유용했다. 인류학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구인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고 정리하느라 평생을 바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구 인류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인간들의 생활 모습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한 권의 보고서로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우리가 지구로 이주해서 자연스럽게 지구인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p.13-14)



이 책은 아름다운 '고리'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지구인의 문화를 둘러보고 정리한 가상의 인류학 보고서다. 지구의 인류학자들이 작성한 내용을 토대로 인간들의 모습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한 권의 보고서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현실감과 설득력을 뒷받침한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권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등 인류 문화의 본질을 꿰는 이야기 속에 사회학, 문화의 교류와 변화, 성 역할, 종교의 역할 등 인류 문화를 전반적으로 다룬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속한 인류와 문화를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이해할 수 다. 특히 성장의 한계에 달해 위기에 봉착한 외계인들의 모습을 통해 지구경제 발전의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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