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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18. 2023

만약에.

나혜림, <클로버>, 창비, 2022


 

그 고양이는 밤처럼 검어서, 해가 지면 밤과 분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녀석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온전히 볼 수 있지만, 세상은 녀석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는 여유롭고 우아한 자태로 해바라기를 하며 세상을 바라보았다.(p.6)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 <클로버>는 십대 소년과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검은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따분해하는 눈빛이다. 그렇게 여유롭고 우아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검은 고양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내 인생은 얼마짜리일까?' 고민하는 정인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악마 '헬렐 벤 샤하르'라고 소개한다. 헬렐은 휴가 중인 일주일 동안 정인의 곁에 머무르 정인의 욕망을 건드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마디도 지지 않는 정인의 마음, 쉽게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나혜림 작가는 단편소설 <달의 뒷면에서>로 소설집 <항체의 딜레마>에 참여했으며, 장편소설 <클로버>로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은 <위저드 베이커리> <아몬드> <페인트> <유원> 등으로 한국 청소년문학의 위상을 드높여 온 상이다. <클로버>는 창비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에게 "읽는 즐거움이 큰 것에 못지않게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 여운이 깊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청소년 심사단에게 "주인공을 통해 느껴 보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시간당 9,120원. 킬로그램당 150원. 정인이의 세상에선 모든 시간과 무게에 돈이 붙는다. 다른 아이들도 그럴까? 2박 3일에 354,260원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태주도 알까?
  어쩌면 너랑  여기를 같이 쓸 수도 있겠다. 비슷한 처지잖아. 사람들은 우릴 싫어해. 자기들도 우리처럼 될까 봐 무서운 건지.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야. 귀신이나 뭐 그런 거라면 그냥 상상이겠거니 하고 무시해 버리면 그만인데, 여기 진짜로 서 있으니까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화를 내. 눈에 띈다는 이유로. 그건 우리의 문제일까, 사람들의 문제일까, 아니면 세상의 문제일까?(p.20-21)



중학생 정인은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주 3일은 학교의 승인을 얻어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폐지를 주워 가방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아간다. 정인은 하루하루 시간과 무게에 돈을 계산하며 힘겹게 살지만 용기를 낸다. 정인의 꿈은 할머니를 위해 백만 원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 정인의 마음을 간파한 고양이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헬렐) 등장해 유혹한다.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소년."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는 헬렐의 유혹에 정인이 흔들리는데...



<클로버>는 삶에서 마주하는 '만약에'와 '선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만약에'로 시작되는 여러 갈래 길에서 사람들은 매 순간 갈등하며 흔들린다. 수많은 선택 앞에서 쉬운 길을 선택하고 싶은, 요행을 바라는 유혹에 빠지기 다. 악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연약한 십대 소년이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으며 '나'다운 선택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읽는 이도 내면의 성찰을 하게 된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 십대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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