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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Feb 17. 2023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할까?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16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 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몸으로 배운 것은,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p.40-41)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 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고, 그 힘은 올바르고 공정한 것이어야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라고 무라키미 하루키 작가는 말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키미 하루키가 1979년 등단 이후 최초로 자신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견해를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에 대해 그는 '출판사에서 의뢰를 받아 쓴 글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라고 후기에서 밝힌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소설을 써나가는 상황에 대해, 한자리에 정리해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그런 글을 조금씩 단편적으로 테마별로 모아두었고,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삼십오 년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연극학과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문학가로서의 꿈을 갖고 나서 생계를 위해 카페를 운영했으며, 번역가로서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1979년 6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제22회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다. 1982년 <양을 쫓는 모험>으로 제4회 노마 문예상을,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로 제21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작품과 수상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0년 이후 해마다 노벨 문학상의 수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튼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입니다. 이건 ‘이를테면’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 맨 처음의 테마를 그대로 척척 명확히, 지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면 ‘이를테면’이라는 치환 작업은 전혀 필요 없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어쩐지 강변强辯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대체로 그렇게 믿고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도 당연합니다.(p.23-24)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일이 “불명료한 점,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그것에 대해 ‘그건요, 이를테면 이런저런 것이에요’라고” 수없이 반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반대로 “소설가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변화하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진실, 진리를 에둘러 찾아가는 소설의 가치와 소설가의 역할을 자각하게 해주는 지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삼십오 년 동안 글쓰기 현장에서 창조적 노력을 거듭해 온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적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직업인으로 바라보는 문학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삶의 현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 대한 현실감과 내공이 돋보인다. 간결한 언어로 쉽게 읽히면서도 자전적 에세이 속에 담긴 통찰력 있는 메시지가 여운을 남긴다. 재능을 넘어 꾸준함과 지속력을 위해 밑받침되어야 하는 체력관리와 멘탈 관리등 작가적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완성도 높은 그의 문학 작품들을 접해왔던 독자라면 소설가로서 그의 삶이 흥미롭고 친숙하게 읽힐 수 있다. 반면에 가볍고 헐거운 느낌의 에세이 무게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로 세계적 명성을 거둔 무라카미 하루키의 현장 글쓰기 지도서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작가 지망생을 비롯한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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