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민음사, 1999
그는 그곳에서 고리오의 딸이 넋을 잃고 좋아하는 사치품, 금박 제품, 틀림없이 값비싼 물건들, 벼락부자의 우둔한 사치와 첩의 낭비를 보았다. 이런 황홀한 인상은 보세앙 부인의 웅장한 저택을 보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상상력은 파리 사교계라는 고지에 몰두해 있어서 그의 마음에 수많은 그릇된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성과 양심은 느슨해졌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부자들에게는 법이나 도덕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세만이 <이 세상에서 최후 수단> 임을 발견했다. (...)
라스티냐크는 성공하기 위해서, 평행하는 두 개의 참호를 뚫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즉 학문과 연애에 기대어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는 것이다.(p.113-114)
그녀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아버지에 대한 내 의무가 어떤 것이란 것을 내게 가르쳐줄 필요가 없어요. 나는 오래전부터 아버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한마디도 하지 말아요, 으젠. 당신이 옷을 바꿔 입고 오시지 않으면 나는 한마디 얘기도 안 듣겠어요.
(...)
「제발 어서 가세요, 으젠. 당신은 부인을 화나게 하고 있어요」
테레즈는, 세련되게 아버지를 죽이는 이 딸의 처사에 놀란 청년을 떠밀면서 말했다.
그는 가장 비통하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는 이 세상을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목까지 빠져버리는 진흙탕의 바다라고 생각했다."(p.34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