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19. 2023

인간군상의 비루함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다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민음사, 1999



<고리오 영감>은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장편소설이다. 발자크는 이 책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 기법을 처음 시도했고, 평생 이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발자크의 모든 소설 사이에는 작중인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전한 사회 형태를 만들고 있는데, 다양한 인간의 삶을 그린 90여 편을 서로 엮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구성한 <인간 희극>은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살롱에 들락거리는 상류계 인사들과 고상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 아니라, 19세기 한복판에서 큰 덩어리로 꿈틀거리는 '대중'"(p.403)이다. 놀라운 통찰력으로 역사의 방향을 미리 제시한 <고리오 영감>은 가장 발자크다운 작품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군상의 비루함과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저자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프랑스 트루 시에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20세 때 돈과 명예를 중시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십여 년간 독서와 습작, 경제적 독립에 전념했지만 실패하고 소설을 써서 빚을 갚아나가는 등 평생 고생했다. 생계를 위해 통속소설가로서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내던 그는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정식 작가로 데뷔하며 전환점을 이룬다. 30세 때 스콧과 쿠퍼의 영향을 받은 역사소설 <올빼미당>을 발표하고, 1948년에 이르기까지 약 이십 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다.  외 작품으로 <고리오 영감> <외제니 그랑데> <절대의 탐구> <사라진 환상> 등이 있으며, 모두 <인간 희극>에 포함되어 있다.




'으젠 드 라스티냐크’는 가난한 귀족 집안 출신의 법학도다. 파리의 하숙집에서 생활하던 그는 먼 친척 보세앙 부인에게 도움을 받아 파리 사교계에 진출한다. 라스티냐크는 같은 하숙집에 묶고 있는 왕년의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이 뉘싱겐 남작 부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출세 수단으로 삼는다. 그의 이성과 양심은 점차 느슨해지고 출세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사교계라는 고지에 몰두한다. 오직 공부만으로 성공하겠다는 덕성스러운 마음을 가져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에 쉽사리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는 학문과 연애에 기대어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기로 마음먹는데... 평행선처럼 보이는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라는 두 가지 욕망을 모두 이룰 수 있을까?



그는 그곳에서 고리오의 딸이 넋을 잃고 좋아하는 사치품, 금박 제품, 틀림없이 값비싼 물건들, 벼락부자의 우둔한 사치와 첩의 낭비를 보았다. 이런 황홀한 인상은 보세앙 부인의 웅장한 저택을 보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상상력은 파리 사교계라는 고지에 몰두해 있어서 그의 마음에 수많은 그릇된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성과 양심은 느슨해졌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부자들에게는 법이나 도덕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세만이 <이 세상에서 최후 수단> 임을 발견했다. (...)
라스티냐크는 성공하기 위해서, 평행하는 두 개의 참호를 뚫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즉 학문과 연애에 기대어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는 것이다.(p.113-114)



라스티냐크는 궁핍한 생활을 하는 어머니와 두 누이에게 편지로 호소해 사교계 진출을 위한 돈을 마련한다. 신사복을 갖춰 입은 그는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뉘싱겐 부인과 사랑에 빠지고, 두  딸에게 헌신하다 버림받은 고리오 영감에 대해 알아다. 점진적으로 쇠락해 가는 부르주아 노인 고리오 영감은 죽어가면서도 두 딸들에게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라스티냐크는 죽음을 앞둔 고리오 영감의 슬픈 소식을 전하러 둘째 딸 뉘싱겐 부인을 찾아가고, 무도회에 갈 준비를 던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거절한다. 그리고는 라스티냐크에게 무도복을 입고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아버지에 대한 뉘싱겐 부인의 처사에 놀라고 절망하면서도 '양심' 저버리고 무도회에 가는데...



그녀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아버지에 대한 내 의무가 어떤 것이란 것을 내게 가르쳐줄 필요가 없어요. 나는 오래전부터 아버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한마디도 하지 말아요, 으젠. 당신이 옷을 바꿔 입고 오시지 않으면 나는 한마디 얘기도 안 듣겠어요.
(...)
「제발 어서 가세요, 으젠. 당신은 부인을 화나게 하고 있어요」
테레즈는, 세련되게 아버지를 죽이는 이 딸의 처사에 놀란 청년을 떠밀면서 말했다.
그는 가장 비통하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는 이 세상을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목까지 빠져버리는 진흙탕의 바다라고 생각했다."(p.348-349)




<고리오 영감>은 출세 지향적인 귀족출신 젊은이와 점진적으로 쇠락해 가는 부르주아 노인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파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숙집과 사교계라는 상반된 배경을 소재로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의 속물근성과 감정의 밑바닥까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 살아 숨 쉬는 생명력과 역동성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사회에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다만, 한 권의 책 안에 완결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독자라면 다양한 인물들서사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열린 결말 또한 모호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소설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배우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