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16. 2023

<신영복 평전>, 돌베개, 2019



선생은 감옥 20년을 전후로 각각 27년여의 세월을 사셨습니다. 전반 27년은 일관되게 제도권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았고,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반 27년은 성공회대를 중심으로 '선생'으로 사셨습니다. 감옥도 대학이라고 하시니, 결국 평생 학교에서 사신 셈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평생 거치신 학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서문 중에서  



<신영복 평전>은 '서문'에서 밝히듯 선생이 평생 몸담은 '학교'에 관한 기록이다. 그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2016년에 75세로 별세하기까지 '학교'에 속한 사람이었다. 1988년 8월, 20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한 신문에 자신의 삶을 세 길로 비유해 썼다. 첫 번째 길은 학교 사택에서 태어나 책과 교실에서 이어진 28세까지의 삶이고, 두 번째 길은 20년 20일 동안의 감옥살이, 세 번째 길은 성공회대에서의 선생으로서의 삶으로 설명했다. 살아생전에 그가 20년의 감옥 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 명명했던 만큼, 이 책은 그의 일생에 걸친 학교에 관한 기록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공회대학교 최영묵(신문방송학과) 교수와 김창남(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및 문화대학원) 교수가 공동 집필했다. 두 저자는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신영복 선생의 삶을 정리하며 그를 평가하고 정의하는 의미가 아닌, 시간이 흘러 그에 관한 다양한 사실 정보들이 왜곡되거나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고자 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했으며, 1부에서는 쇠귀의 삶, 2부에서는 쇠귀의 사상, 3부에서는 저술의 세계, 4부에서는 숲으로 간 나무-인간 신영복의 추억을 조명했다. 20년의 감옥살이와 보호관찰로 이어지는 시대 상황 속에서 솔직한 기록을 남기기 어려웠던 신영복 선생의 삶과 사상을 한 권의 책 속에 총체적으로 엮었다.



훈습, 학습, 각성의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배운 붓글씨와 동양 고전은 주어진 조건이었다. 어린 시절의 문화적 경험은 평생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쇠귀는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통해 기존의 인식틀을 재구성한다. 감옥에서의 면벽 명상과 인간관계를 실천하는 과정은 머리에 각인된 훈습과 학습된 세계를 넘어서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쇠귀는 훈습된 성리학적 세계관을 기본 바탕으로, 대학 시절에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인간해방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했고, 감옥에서 훈습된 것과 학습한 것을 성찰하며 여러 부류의 사람과 만나면서 새로운 ‘성찰적 관계론’을 형성한다.(p.188-189)



'쇠귀’는 인생의 책으로 각각 훈습, 학습, 각성을 대표하는 『논어』, 『자본』, 『노자』를 꼽았다. 그는 세 권의 책에 대해 “『논어』는 인간주의 선언이고,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이고, 『노자』는 자연에 대한 최고 담론이라고 생각했다. 쇠귀 사상의 기반은 훈습된 유교적 소양과 선비 정신, 치열하게 공부해서 축적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감옥을 통해 각성한 성찰적 휴머니즘으로 정리할 수 다. 그는 훈습된 성리학적 세계관을 기본 바탕으로, 대학 시절에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인간해방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했고, 감옥에서 훈습된 것과 학습한 것을 성찰했다. ‘훈습’, ‘학습’, ‘성찰'을 통해 말과 글과 삶이 일관된 삶을 살았다.




<신영복 평전>오랜 세율 동료이면서 후배이고 제자였던 최영묵, 김창남 교수가 자신들의 눈에 비친 선생의 모습을 꾸밈없이 들려주는 책이다. 선생삶과 사상, 저술의 세계 등 인생 전반에 대한 독자 이해를 돕고, 개인의 삶이 사회와 연결되는 유기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훈습, 학습, 성찰적 관계론으로 확장시켜 사유와 각성의 시간을 갖게 한다. 다만, 저술 도서를 근간으로 선생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맥의  흐름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분과 주석을 표시하는 숫자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이 책은 진보적인 사고로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 자기 성찰과 관계론적 삶을 추구하는 분들,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삶의 원칙과 방향성, 리더십 등을 배우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은 드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