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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15. 2023

좋은 사람은 드물다

<플래너리 오코너> 세계문학단편선 12, 현대문학, 2014



세계문학단편선 <<플래너리 오코너>>는 루푸스 병을 앓은 오코너가 짧은 생애 동안 남긴 서른한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그녀가 아이오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발표한 첫 단편 <제라늄>부터, 입원 중 의사의 만류에도 병원 베개 밑에 원고를 숨겨가며 끝끝내 집필한 마지막 단편 <심판의 날>까지, 초기 단편들과 단편집에 실린 작품을 연대순으로 묶었다. 작품의 주요 내용으로 인간의 실존과 부조리, 허위와 위선을 해학적인 언어로 그려내 극적인 재미를 살렸다. 특히 등장인물과 독자들에게 강렬한 구원의 순간을 체험하게 하는 내용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구원'은 무자비한 폭력이나 돌연한 죽음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며, 오랜 세월 무수한 평론과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1925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아이오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스물다섯 살에 루푸스병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후 12년 동안 질병과 싸우며 장편소설 두 편과 단편소설 서른두 편으로 문학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고향에서 은둔하며 걷지 못할 상황에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으며, 확고한 작가 정신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20세기 미국 소설의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첫 장편소설 <<현명한 피>> '남부 고딕' 장르를 정의하는 미국 소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생존 시기 사후에 걸쳐 세 차례의 오헨리상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상  <<단편소설선집>>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오코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편소설 <좋은 날은 드물다>에서 '비극'과 '구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할머니'의 가족인 외아들 베일리와 아이들 엄마, 세 아이가 함께 플로리다로 가족여행을 계획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행지는 플로리다로 예정되어 있지만 할머니는 테네시 주 동부의 친척들이 보고 싶어서 베일리에게 신문 기사 내용을 들먹인다. 자칭 ‘부적응자’라는 범죄자가 연방 교도소를 탈출해 플로리다 쪽으로 갔다는 기사를 보여주지만, 결국 예정된 여행지로 가족여행을 떠나게 다. 달리는 차 안에서 할머니는 엉뚱한 제안을  경유지를 거쳐 가게 되고, 가족들 몰래 바구니에 숨겨 왔던 고양이가 뛰쳐나오면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가족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는데...

 


할머니는 플로리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테네시 주 동부의 친척들을 보고 싶어서, 베일리의 마음을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베일리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할머니의 외아들이었다. 그는 식탁 앞 자기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저널>의 주황색 스포츠 섹션을 읽고 있었다. “이걸 보렴, 베일리. 이걸 읽어 봐.”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앙상한 골반을 짚고 서서 다른 손으로는 아들의 벗어진 머리에 신문을 대고 흔들었다. “자칭 ‘부적응자’라는 친구가 연방 교도소를 탈출해서 플로리다 쪽으로 갔대. 이자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여기 다 나와 있으니 읽어 봐. 나라면 아이들을 데리고, 탈옥한 범죄자와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 거야. 그런 건 내 양심에 맞는 일이 아니야.”(p.163)



자동차가 전복되고 지나가는 차량에 도움을 청하던 할머니네 가족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할머니 눈앞에서 마주한 그들 중 낯익은 얼굴이 부적응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동시에 '부적응자'라고 소리치면서 위기 상황에 처한다. 아들이 먼저 숲 속으로 끌려가고, 이어 아이들과 엄마가 숲 속으로 끌려간다. 부적응자와 홀로 남은 할머니는 이 말 저 말 두서없이 내뱉으며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런 끝에 할머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부적응자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할머니가 입을 여러 번 벌렸다 닫았다 하며 “예수님, 예수님”이라고 한탄하듯 말한다. 그 말은 “예수님이 당신을 도와줄 거라는 뜻이었다. 부적응자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예수님이 모든 것을 흔들었어요."라고 대답하는데...



마침내 할머니가 한 말은 “예수님, 예수님”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신을 도와줄 거라는 뜻이었지만, 그 말투는 한탄하는 것 같았다.
“그래요.” 부적응자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말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흔들었어요. 그 사람도 나하고 똑같았어요. 다른 점이라면 그 사람은 범죄를 안 저질렀고 나는 저지른 증거가 있다는 것뿐이에요. 나한테는 서류가 있으니까요. 물론 사람들은 나한테 서류를 보여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서명을 합니다. 오래전에 나는 말했어요. 서명을 만들어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서명을 하고 사본을 보관하라고요. 그러면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범죄를 처벌에 부치고 또 그 둘이 잘 맞는지 확인하고 결국 자기가 올바른 취급을 받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내게 부적응자Misfit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하고 내가 받은 벌하고 계산을 맞출 수가 없거든요.”(p.181-182)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은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휩쓸던 미국 남부를 시대적 배경으로, 이 지역 출신의 독실한 톨릭교도였던 오코너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그중 한 작품인 <좋은 사람은 드물다>에서도 가족여행을 떠나는 일가족부적응자의 만남 속에 구원의 메시지를 다. 종교적인 색채 안에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함축성 돋보인다. 간결한 문장과 일상적인 대화 속에 표현하는 심리묘사가 예리하다. 다만 시대적 배경이나 종교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렵게 읽히거나 모호하다가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야기 구성력과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작가지망생과 종교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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