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Jun 18. 2021

내 맘대로 힐링여행 2주 꿈 체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달러구트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손님이 원하시는 꿈은 전량 매진입니다."

나는 며칠째 자정을 넘겨 달러구트 백화점을 방문했지만 '잠들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는 꿈'을 구매하지 못했다.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에세이 공모전준비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다른 꿈을 추천하는 데스크 직원 페니 옆으로 달러구트 백화점 사장이 다가왔다. 잠깐 얘기를 나누자며 나를 사장실로 안내했다.

"손님, 며칠째 못 주무셨죠? 그런데도 '잠들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는 꿈'을 원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밤이 늦어질수록 머리가 맑아져요. 그런데 뭔가 떠오르려고 할 때 잠이 들어요. 중요한 스토리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2% 부족한 글 때문에 너무 답답해요. 몇 년째 이러고 있으니 너무 불안해요."

"손님한테 더 적합한 꿈 체험이 있는데요. 매진된 상품 대신에 제가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피로하고 지친 마음이 흔들렸다.
"네. 어떤 건지 들어 볼게요."

달러구트가 책상 위에서 신상품 꿈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 위에 '내 맘대로 힐링 여행 2주 꿈 체험'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이룬 게 없는 데 이런 꿈을 사는 게 괜찮을까요? 게다가 공모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맘대로 힐링 여행 2주 꿈 체험이지만, 꿈에서 깨면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오히려 영감을 얻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이 꿈은 12시 전에 잠들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밤은 자꾸 시계에 눈이 다. 11시가 넘어가자 눈꺼풀이 무거웠다. 써 내려간 글에 오타가 다. '12시도 안됐는데 오늘 컨디션은 왜 이럴까' 혼잣말로 툴툴거리며 노트북을 덮었다. '잠들기 전에 스토리를 구상해야지' 노트북 위로 쿠션을 끌어안고 엎드렸다.


불편한 자세로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편히 자야겠다 싶어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발을 내딛자 맨발에 모래알 감촉이 실크처럼 감겼다. 모래알을 발등에 얹으며 해안을 걸어 얕은 바다 위 방갈로 앞에 섰다.

 
'내 맘대로 힐링여행 2주 꿈 체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캘리그라피로 쓴 문구가 문에 걸려 다. 방갈로 안에는 15평 원룸 넓이에 침대와 옷장, 책상, 식탁,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다. 민트 계열의 인테리어 색채가 따뜻하다. 동그란 식탁 위에 자동 메모판이 놓여 있다. 메모판에서 글자가 반짝거린다.

 

'매일 룸 케어를 해드립니다. 전날 밤 10시까지 메모판에 시간을 적어 주세요. 자동으로 전송됩니다. 필요한 서비스가 있으면 언제든 메모판에 적어주세요. 30분 이내로 비치해드립니다.'


왠지 익숙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었다. 맨발로 걷다가 달리다가 얕은 물가에 발을 적셨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지루할 틈 없이 해변을 돌아다녔다.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은 상쾌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온 휴가야?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 근데  에세이 공모전 마감이 언제더라? 이제 좀 써야 할 텐데.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손끝으로 내려와 자판을 두르리고 싶은 열망으로 꽉 찼다.


노트북이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 있네. 끌어안고 있던 쿠션 아래 노트북을 더듬으며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아, 꿈이었구나. 너무 생생해서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머리가 맑아졌다.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갔다.


'내 맘대로 힐링여행 2주 꿈 체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