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15. 2023

"귀 기울여보라"

루스 오제키, <우주를 듣는 소년>, 인플루엔셜, 2023

※ (주)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읽고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쉬잇…… 귀 기울여보라!
이건 나의 책이고, 지금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들리나?
하지만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사물들은 항상 말을 하지만, 당신의 귀가 적응이 되어 있지 않으면 듣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p 13)



'읽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모든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발터 벤야민, 나의 서재 공개)고 한다. 어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쳐 인생책이 다. 내가 읽어왔던 수많은 책들 중에도 목소리를 건네책들이 존재했다. 이십 대에 읽었던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최근 독서토론 도서였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마법의 대화를 속삭이며 무한의 세계로 이끌다. 귀 기울여 듣는  내 역량일 따름이었다. 이전과 달리 책이 건네는 의미와 목소리에  기울이지 못하고 다양한 볼거리에 시선을 빼앗기중에 책이 서술자인 협찬도서를 받아 들었다. 신간도서 <우주를 듣는 소년> 속의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과 말하는 책'의 마법 같은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주를 듣는 소년> 소설가이자 영화 제작자이며 문예창작과 교수인 루스 오제키의 장편 소설이다. 그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미스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나라대학에서 일본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영화 아트디렉터로 경력을 쌓은 후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이후 소설 창작으로 영역을 옮겨 1998년 첫 장편소설 <내 고기의 해>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2013년 발표한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LA타임스소설상, 영국독립서점협회상, 야스나야폴랴나상(톨스토이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 소설인 <우주를 듣는 소년>으로 2022년 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은  첫 문장이 제일 중요하다. 첫 조우의 순간, 독자가 첫 페이지를 펼쳐서 시작하는 문구를 읽을 때, 그건 마치 누군가와 처음 눈이 마주치거나 처음 손을 잡는 것과 같다. 우리도 그것을 느낀다. 책은 눈이나 손이 없다. 사실이다. 그러나 책과 독자가 서로를 위한 존재라면, 둘 다 그것을 안다. (p.125)



이 책서술자는 책이다. 책이 주인공 소년에게 말을 건넨다. 열네 살 소년 베니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주변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소년의 엄마 애너벨은 차마 버리지 못한 남편의 유품과 회사 재택 근무자에게 떠안긴 자료 등 모든 물건들을 집에 저장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온갖 소음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베니는 수업 중에 빈정대는 가위로 자신의 다리를 찌른 사건 이후 학교에서 '사이코'로 낙인찍힌다. 학교에서 도망친 베니는 공공도서관에 숨어들어 '모든 소리를 담고 있는 광활하고 무한한 정적의 장소'에서 어떤 목소리와도 다른 특별한 책의 소리를 듣게 . 그곳에서 부랑자 시인, 쓰레기를 줍는 소녀 예술가 등 도서관의 괴짜들과 함께 진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 모험을 시작한다. 



베니

 그 목소리는 너였어. 그렇지? 그것이 네가 내게 처음 말을 건 순간이었어. 나는 종이가 만들어내는 모든 소음 사이에서 네 목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 있었지만, 네가 나머지 다른 목소리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어. 사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난 네가 누구인지, 혹은 네가 무엇인지 몰랐어. 그저 네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만 알 뿐이었지.
(p.371)



 그래, 맞아, 베니. 우리는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했어. 네가 쓰러지려 할 때, 우리는 널 잡아주고 싶었지만, 재단기의 날이 가까이 있다는 걸 고려하지 못했어. 네가 베었을 때 우리는 속이 상했지. 사실은 우리 책들이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어쨌거나 우린 네가 우리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에 안도했지. 안도했고 행복하기도 했어. 왜냐하면 책이 그처럼 인간과 접촉하는 게 쉽지는 않거든.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이 부르는 것을 알아듣지도 못해. 다들 휴대전화를 확인하느라 바쁘지.
(p.372)



소년과 책이 대화를 이어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오래된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이지만, "소년이 책을 쓰는 걸까? 아니면 책이 소년을 쓰는 걸까?"라는 궁금이 .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소년은 다른 목소리들과 다른 책의 소리를 알아들었, 책은 '네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해준 소년에게 고마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이 부르는 것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소년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에 안도하고 행복해한다. 서술자인 책은, 자신이 소유한 책들에 한 에세이를 기억할 만한 구절로 끝맺은 벤야민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소유는 수집가가 사물과 맺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다. 그 사물이 그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그 사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p.373)라고. 소년과 책의 관계는 이렇게 맺어진 것이 아닐까.





<우주를 듣는 소년>은 주변 사물의 목소리를 듣게 된 소년이 상실을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책을 쓴 루스 오제키는 과학기술, 종교, 환경, 정치, 대중문화를 아우르며 폭넓은 주제를 통합하는 개성 넘치는 글쓰기로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2022년 수상작으로 이 책을 선정한 여성문학상 측 심사평으로, "반짝이는 문체, 따뜻함, 지성, 유머, 신랄한 풍자가 쟁쟁한 후보작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였다. 책과 독서의 힘을 예찬하는 이 책은 삶과 죽음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전했다. 책과 작가에게 너무나 적합한 찬사다. 다만 700페이지 분량의 책의 두께를 감안해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읽는다면 '진짜' 책과 교감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스탄불 작가' 오르한 파묵의 '비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