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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08. 2023

'이스탄불 작가' 오르한 파묵의 '비애'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2008, 민음사



나는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 오르한 파묵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라 사르트르는 말한. 그의 말처럼 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뛰어넘어 사람들을 무한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하늘 길이 열리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책을 통해 세계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알아가는 흥미로운 요즘이. 언젠가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을 읽고 난  잠시 머물렀던 일본의 도쿄 시내가 친밀하게 떠올랐고, TV 채널에서 미국의 뉴욕 시내가 등장할  <사나운 애착>(비비언 고닉) 주인공 모녀가 걸었던 거리를 상상하곤 했다. 최근에는 <이스탄불>(오르한 파묵>을 읽고   마치 그 도시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오르한 파묵이 쓴 '도시 그리고 추억'에 관한 회상록 <이스탄불> "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작가의 마음, '비애'라는 기본 정서에 역사성을 더해 도시의 정서로 승화시키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




오르한 파묵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출간해 '오르한 케말 소설상'과 '밀리예트' 문학상, <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라르 소설상'과 프랑스의 '유럽 발견상'을 , <검은 책>(1990)으로 '프랑스 문화상'을 받으면서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새로운 인생>(1994)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을 세웠으며, <내 이름은 빨강>(1998)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을 받는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다. 이외 작품으로 <하얀 성>(1985), <눈>(2002) 등 다수의 작품을 출간했으며,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2003) 발표하고 2006년 ‘노벨 문학상'수상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스탄불'은 튀르기예(터키)에 속한 도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자리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오르한 파묵은 흑백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작가가 되기까지의 개인사를 도시의 변천사와 함께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책 속에 수록된 이스탄불의 풍경과 오르한 파묵의 어린 시절을 담은 흑백사진 200여 점은 마치 도시를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실재감을 준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비잔틴을 정복하여 없애 버린 오스만인들조차 내게는 아주 먼 옛날 사람들처럼 느껴졌다"며 "우리는 그들 다음에 이스탄불에 온 '새 문명'의 첫 세대였다"(p.238)고 말한다. <이스탄불>에서 오르한 파묵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 때문에 겪었던 정서적인 불안감, 가족 간의 갈등, 첫사랑, 슬픔, 행복, 꿈을 찾아가기까지의 개인사를 도시의 변천사와 함께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100년간 이스탄불 음악에서 비애가 어떤 정신 상태로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나, 현대 터키 시에서 비애가 원형 단어로서뿐만아니라(마치 디완 시에서의 경구처럼) 어떤 감정, 삶에서의 실패, 의욕 결핍 그리고 번뇌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갖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단지 이 단어가 갖는 역사적이며 존경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내 어린 시절의 이스탄불이 내게 불러일으킨 강렬한 비애의 감정의 원천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역사나 오스만 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뿐만 아니라, 이 역사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비애는 음악의 중요한 분위기 기이며 시의 기본적인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인생관과 정신 상태 그리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든 재료의 암시이다. 이 모든 특징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에 비애는 도시가 자랑스럽게 흡수하거나, 흡수하려고 했던 정신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정적인 만큼이나 긍정적으로 여겨진 감정이다.(p.130-131)



'비애'는 <이스탄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오르한 파묵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개인사 도시의 역사를 맞물려가'비애'라는 감정에 대해 이스탄불의 중요한 정서로 언급한다. 그는 어린 시절 뿌연 창을 보면서 느꼈던 '멜랑꼴리'와 '비애'를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 사람이 느끼는 멜랑꼴리가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암담한 느낌의, 비애에 가까운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150년간(1850-2000) 이스탄불을 지배하고 도시에 널리 퍼진 기본적인 감정이 비애"(p.321)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를 반영하는 이스탄불의 '비애'는  "음악의 중요한 분위기이며 시의 기본적인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인생관과 정신 상태 그리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든 재료의 암시"(p.131)로,  부정적인 만큼이나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으로 이끌며 균형을 맞춘다.




<이스탄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터키 작가'라기보다는 '이스탄불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이스탄불과 동일시된다. 스웨덴 한림원도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고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책은 자전 에세이를 뛰어넘어 한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이스탄불 역사서'라고 해도 될 만큼 에세이의 확장성이 뛰어나다. 개인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기본 정서로 '비애'라는 감정을 시종일관 깊이 있게 파고들어 도시의 정서로 이해시키는 점도 돋보인다. 다만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하는 독자라면  도시에 머무르며 비애에 젖어 있는 감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에세이를 쓰고 싶은 분들과 이스탄불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 세계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일독 이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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