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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02. 2023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장일호 에세이,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우연찮게 SNS에서 연달아 눈에 들어왔던 책 제목과 표지 색채, 문장이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라는 문장은 마음속깊이 파고들어 슬픔을 전염시키고 정화시켰. 슬픔을 곁에 두고 나란히 앉아 삶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까닭일까. 슬픔은 왠지 묻어둬야 할 것 같고 일상생활에서 외면하고  감정이었는데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을 읽고 슬픔과 나란히 앉는 삶 상상하게 되었다.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슬픔'에게 건네는 마침표 이야기 <슬픔의 방문> 덕분이다.




저자는 굵직한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기사들로 '바이라인'을 각인시킨 <시사IN> 기자다. 그녀는 문화팀, 사회팀, 정치팀을 두루 거쳐 오며 세상에서 밀려난 현장에 가장 많이 머물렀고, 세상이 눈감은 이들에게 가장 마음을 기울였다. 기자의 일이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하는 일"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슬픔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마침표를 건져 올린다. 야망은 크지만 천성이 게을러 스스로를 자주 미워한다. '망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망해 버리고 싶지는 않다. 묻어가는 일에 능하고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 이토록 귀찮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책을 읽고, 살아간다.



"여성으로 사는 일은 일상의 크고 작은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즘 덕분에 삶에서 아주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내게 입이 되어 주고,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생존자'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몇 번이고 발음하며 입 안에서 굴려 봤다.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니 감격스러웠다. 내가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당한 일은 내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 고통을 '자원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따라 고통은 다르게 해석된다."(p.91)



아버지의 부재와 유년시절의 가난, 기자로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여성으로 사는 일은 일상의 크고 작은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삶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입이 되어 주고 목소리가 되어 준 페미니즘적 삶을 용기 내어 글로 표현함으로써 그녀는 개인의 슬픔을 사회적인 연대와 응원으로 확장시킨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자살', 성폭력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자리 이동하기까지의 심적 고통, '암환자'라는 슬픔의 단어들을 곁에 둔 채로 나란히 앉아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슬픔의 방문>은 슬픔이 찾아온 날들의 기록을 담은 장일호 첫 에세이로,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 한 편의 시 같은 언어들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건져 올려 정화시켜 준다. 무엇보다도 개인적 경험들을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들에 연결시키며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 점이 돋보인다. 다만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일관된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다양한 책 속에서 가져온 인용글이 딱딱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 책은 일상의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되어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분들과 페미니즘 입문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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