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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22. 2023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니콜라이 고골, <외투>, 문학동네, 2011




<외투>는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대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중단편 소설이다. 고골은 소러시아(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1809년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열아홉 살에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간다. 1831년 고향의 신화와 전설, 민담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 <디칸카 부근 마을의 야화>를 발표하면서 산문작가로 주목받는. 그 후 <넵스키 거리> <광인 일기> <외투>와 같은 페테르부르크를 소재로 한 단편들을 발표했으며, 1836년에는 러시아 관료제와 인간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희곡 <검찰관을> 발표해 호평받는다. 그리고 러시아 농노제를 풍자한 <죽은 혼 1, 2>를 집필하지만,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2권의 원고를 소각하는 등 정신적 혼란에 빠져 1852년 생을 마감한다.





최근에 국에 들어온 젊은이는 다른 동료들을 따라 그를 조롱하려다 마치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갑자기 그만두었다. (...)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 이마가 벗어진 작달막한 관리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 젊은이의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 속에서 "나는 당신의 형제요"라는 또다른 말이 울렸다.(p.14)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가난한 만년 9급 문관이다. 서류를 베껴 적는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국에서는 성실하지만 가난하고 볼품없 아카키를 조롱하고 놀려댄다. 그에 대한 무시와 멸시는 새로 들어온 동료들에게조차 당연한 일로 이어진다. 참다못한 그가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을 , 누군가(최근에 국에 들어온 젊은이)는 강한 연민을 느끼며 "나는 당신의 형제요"라는 또다른 말을 지만 아카키 편에 지는 못한다. 겉으로는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약자를 대하는 무례하고 잔인한 모습에서 현대사회의 갑질, 왕따, 집단 괴롭힘 등의 행태가 떠오른다.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했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이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p.33)



가난한 아카키의 인생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낡은 외투를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그는 궁리 끝에 일 년 동안 일상의 지출을 줄이기로 결심하면서 새로운 외투에 대한 기대감에 활력이 넘친다. 절약하는 생활에 차츰 익숙해진 그는 심지어 저녁마다 굶는 게 완전히 습관이 되고, 앞으로 생길 외투를 그리며 행복감을 맛본다. 마침내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아카키에게 동료들이 호감을 보이자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아카키의 행복도 잠시뿐,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기고 마는데... 외투에 얽힌 아카키의 희비극적인 삶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외투'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속물근성을 풍자한다.




<외투>는 고골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삶의 목표가 고작 외투인 소시민의 모습과 비인간적인 관료제도를 희비극적으로 그려낸다. 간단한 스토리에 비루한 인간에 대한 동정과 연민, 비웃음과 멸시를 이중적으로 담아내는 구성력이 뛰어나다. '고골의 시기'(1830~1840)로 불리는 비판적 리얼리즘이 형성된 때에 쓰인  책으로, 도스토옙스키가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말할 정도로, 러시아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나는 이야기의 예술적 실현에는 내용과 형식의 균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골의 <외투>에는 그러한 균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추천한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평가이견을 찾기 어렵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 속물근성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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