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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16. 2023

'사랑해야 한다'

로맹가리(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13




<자기 앞의 생>을 쓴 '로맹가리'는 본명이 로만 카체프로, 포스코 시니발디, 사탕 보가트 등의 필명으로 활동한 작가다.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니스로 이주했으며,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45년에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프랑스 비평가상을, 1956년에 <하늘의 뿌리>를 발표해 공쿠르상을 받았다.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했다. 그 외 <여자의 빛>(1977), <노르망디의 연>(1980)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p.10)




주인공 '모모'는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을 맞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 알았던 '로자 아줌마'가 대가를 지불받고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맞이하는 슬픔과는 거리가 다. 밤새 울고 또 울 해결할 수 있는 철부지 유년시절의 슬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나이에 가혹한 '자기 앞의 생'끌어안고 모모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버려진 아이 모모와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의 조건적인 인연이지만 불행과 슬픔, 고통, 사랑 속에서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며, 혈연보다 더 소중한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길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태인이라면, 좋은 일 한 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로자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p.268)




카츠 선생님은 정기검진을 마친 후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겨야겠다고 말한다. 이에 머뭇거리던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할 수 없다며 "안락사를 시겨주실 수는 없나요?"라고 묻는다. 놀란 카츠 선생님이 안락사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그럴  없다고 대답하지만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달라고 감정적으로 호소한다. 자신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모는 카츠 선생님에게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며 시간을 버는데... 남은 생 고통스럽게 마감하싶지 않은 인간의 죽을 권리 문명국가의 법 사이에서 '안락사'는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 소년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책이다. 이들의 밑바닥 인생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난 사람들의 불행, 슬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열네 살 소년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모모의 목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귓전맴돈다. 묵직한 주제에도 이 책은 조숙한 열네 살 소년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구성력 탁월해 가독성을 높이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나 표현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 책은 자신과 가족의  돌아보고 사랑의 의미를 되찾고 싶어 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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