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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un 05. 2023

'영화광' 정희진의 영화 속 세상 읽기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교양인, 2018



<혼자서 본 영화>(교양인, 2018) 여성학자 정희진이 지난 20년 동안 써온 영화 감상문이다. 저자는 "십 대 시절의 메모들은 사라졌지만 1997년부터 착실히 모아 두었"(p.20) 던 메모와 노트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20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이 책에 저자는 페미니즘, 상처에 관한 글 등 자신의 모습을 실어, 자신을 드러내고 알아가는 과정에 중요한 의미 두었다고 한다. 이 책을 쓰는 시간이 행복해서 하루에 20-30장씩만 아껴 가며 썼다고 한다. 이렇게 쓰인 책 <혼자서 본 영화>는 '나 홀로 극장에'의 의미가 아닌, 그녀와 영화와의 대면이고 느낌이자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 정희진은 여성주의‧평화주의자다. 젠더, 섹슈얼리티, 고통, 언어, 탈식민주의 등에 관한 다수의 책을 썼다. 저자는 "삶을 견디게 해 준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썼다", "영화는 나의 영원한 신세계다."라고 말한다.  책은  3장에 28편의 '인생' 영화를 담았으며, 1장 사랑하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2장 상처가 아무는 시간, 3장 젠더, 텍스트,  콘텍스트를 주제로 영화 속 세상을 바라본다. 1장은 <가족의 탄생>, <하얀 궁전> 등 사랑의 여러 모습과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랑이 사회적‧정치적 문제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들을 모았다. 2장에서는 <타인의 삶>, <밀양> 등 주로 고통과 상처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를 만난다. 3장은 <강철비와 <공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주체와 타자,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문제 등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모았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쉽다'. 그것은 동일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엔 적대했으나 지금은 선망하게 된 타인, 나는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사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경험하기 힘든 인간성이다. 사람은 사상, 사랑, 권력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질문한다.
- <타인의 삶>, p.109-110



2장에 소개하는 <타인의 삶>은 옛 동독 국가보안국의 간부인 주인공 비즐러가 반체제 인사로 지목된 예술가 부부를 감시(도청)하면서, "이제까지 헌신했던 체제와 자기 삶에 대해 총체적인 회의"(p.109)에 빠지며 그들을 동경하게 되는 이야기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인간인가"(p.110)라는 질문을 읽는다. 저자 자신이 주로 글을 쓸 때 느끼는 외로움과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타인의 '훌륭함'을 선망하고 그 갈망이 몸의 변화로 느껴질 때"(p.109)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나'와 '타인'의 삶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영화 속에 투영된 세상을 읽으영화와 사회가 서로를 반영하는 메시지를 찾아낸다.



<혼자서 본 영화>는 '영화광' 정희진이 20년 동안 꼭 쌓아 둔 영화에 관한 '내밀한' 기록이다.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여러 인생을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부분돋보이며, 외로움, 고통, 상실, 행복, 젠더, 페미니즘 등 인생의 모든 것을 녹여내 취향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또한 '지식 습득'을 넘어 타인과 세상을 알아가고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영화=인생'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다. 저자가 선별한 28편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유발하며, 구체적인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아 스포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가볍게 취미로 '영화 보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영화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불편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단순한 영화 관람에서 '영화 읽기'로 시각을 넓혀 보고 싶은 분들과 볼 만한 영화를 추천받고 싶은 분들에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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