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관계는 행복한가요?’ 이런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족을 비롯해 친구, 동료, 이웃 등 타인과 친밀감을 형성하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과 좌절의 순간을 맛본다. 어렵게 친밀한 관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좋았던 관계도 유리그릇 같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금이 간다. ‘나’와 나 아닌 ‘타인’과의 관계는 죽을 때까지 갈등하고 회복하며 복구해 나가야 하는 과제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이고 관계를 피해 갈 수 없다면 능동적으로 부딪히며 극복해 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으로 관계를 돕는 도서를 탐색하다가 손끝에 머무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지금 모습으로 충분하다’라는 위로의 단계를 넘어 관계를 재구성하는 ‘변화의 심리학’에 초점을 맞춘,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다.
저자 문요한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작가다. 아울러 상담과 코칭을 아우르는 퓨전형 카운슬러이다. 그는 1999년 국립서울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 임상의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장심리학자로 글을 쓰고 상담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찾는 ‘바운더리 심리학’과 몸을 통해 마음을 이끄는 ‘신체 심리학’을 연구하며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현재 상담 전문 클리닉인 ‘더 나은 삶 정신과’와 성장 리더십 및 정신훈련 전문 교육기관인 ‘정신경영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굿바이, 게으름>(2007),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2022) 등이 있다.
“바운더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를 말한다.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11쪽)
저자는 ‘바운더리boundary’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와 해법에 접근한다.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이다. 바운더리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나’와 ‘나 아닌 것’을 혼동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잉보호하는 등 상호교류에서 어려움”(11쪽)을 보인다. 그러므로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65쪽)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바운더리가 왜 문제인지, 일그러진 관계의 틀을 실제 사례로 이해를 도우며, 애착손상으로 일그러진 바운더리 4가지 유형(순응형, 돌봄형, 방어형, 지배형)과 행복한 관계의 조건(관계조절력, 상호존중감,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갈등회복력, 솔직한 자기표현)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하다는 것은 갈등과 좌절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좌절을 풀고 관계를 다시 회복했다는 것이다. 모든 친밀함은 고통을 동반한다. 다만 그 고통을 해소하여 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는 것보다 관계의 상처를 잘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92쪽)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83쪽)으로 ‘공감’을 꼽는다. 공감을 통한 정서적 연결감이 건강한 자아를 발달시키고 보호와 교류가 잘 기능하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반복적인 공감의 실패는 애착손상과 자아 발달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 교류방식에 왜곡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의 해결 방안으로 그는 ‘회복’과 ‘복구’라는 단어를 꺼낸다. 애착손상은 ‘회복’하는 것, ‘복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하다는 것은 갈등과 좌절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좌절을 풀고 관계를 다시 회복했다는 것”(92쪽)이라며 위로와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든 친밀함은 고통을 동반한다’라는 그의 언어가 관계의 상비약으로 가슴속에 스며든다.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은 내 맘 같지 않은 관계의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거리’를 되찾아 갈 수 있도록 돕는 ‘변화’의 심리학이다. 저자는 좋은 관계를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211쪽)라고 표현한다. ‘같이’의 핵심은 내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고,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관심을 두고 물어봐 주고 알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역기능적 관계 양상을 보이며 서로를 향한 마음과 표현이 어긋난다.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건 너무 싫어(순응형), 네가 기뻐야 나도 기뻐(돌봄형), 나한테 신경 좀 쓰지 마(방어형),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지배형)이 충돌하며 내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관계의 작은 손상에도 고통을 느낀다. 이로써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원화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관계를 읽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이 관계의 자기결정권을 되찾고 나답게 살아가는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뎌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