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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14. 2024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법무사 1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 서평 연재

※법무사 1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 에 연재한 서평입니다.

https://ebook.kabl.kr/magazine/ebooks/202401/84/index.html






       노르웨이 작가이자 극작가 욘 포세는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탄생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을 보내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유한의 존재다. 하루하루 실존의 불안과 두려움, 기대와 희망을 끌어안은 채 ‘아침 그리고 저녁’의 평범한 일상을 살다 간다. 언젠가는 사라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겠지만 존재 이유와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물, 풍경 속에 머무른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사물들은 사람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흔적을 간직한다. 사물에 흔적으로 덧입혀진 이들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외로움, 불안 등의 감정은 세월이 흘러 서서히 스러진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사색하도록 돕는 책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 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났다. 베르겐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호르달란 문예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해,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발표 후 <이름> <누군가 올 거야> 등 다수의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음악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희곡과 소설, 시, 산문 등 다채로운 글쓰기를 선보이며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선정 이유로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며 마르타와 결혼했고 요한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17쪽)


       <아침 그리고 저녁>은 1부와 2부로 간결하게 이야기를 구성한다. 1부는 노르웨이 한적한 해안 마을의 한 살림집에서 산모가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늙은 산파의 움직임, 고통스러운 산모의 비명, 불안과 기대에 찬 남자의 서성거림과 내적 독백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올라이와 마르타의 사내아이, 어린 요한네스가 태어나 인생의 아침을 맞이하며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2부는 그 사이 세월이 흘러 일곱 아이의 아버지이자 어부로 살아가는 요한네스가 평범하면서도 낯선 일상에서 죽음을 깨닫는 저녁을 담고 있다. 그는 아내도 친구도 떠나보내고 근처에 사는 막내딸을 의지하며 적막하고 고독한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여느 날처럼 하루를 막 시작하는 요한네스의 눈에 사물들, 풍경이 어쩐지 너무 달라 보인다.     


“상상해 보라, 세탁기가 생기기 전에 에르나가 저 통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저 안에다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는지, 그래 결코 적지 않은 빨래였다, 그리고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그리고 저 위 창고 다락에는, 오랜 세월 모인 많은 물건이 있다,” (43쪽)


       요한네스는 여느 아침처럼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모든 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 전혀 다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가 늘 앉던 식탁 맞은편을 바라본다. 지금은 빈 의자인데도 어쩐지 그녀가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어떤 예고도 없이 잠을 자다가 먼저 떠나버린 에르나를 생각하며 요한네스는 오랜만에 창고를 들여다본다.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그곳에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고 그는 독백한다. 사물을 통해 아내의 흔적을 확인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긴다. 사람이 사물을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살아가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건 사람이고 사물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그런 것이다. 남겨진 사물들, 풍경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가 서서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평범한 일상에 담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여느 소설과 달리 큰 사건도 위대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돈과 명예, 권력, 사람들 간의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만이 존재하는 무자극 무공해 소설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명료한 언어로 리듬감 있게 써 내려가, 읽는 이의 침묵을 깨고 생각을 끌어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으며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해, 삶과 죽음의 과정을 하나의 끝나지 않은 문장 속에 담아낸다.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은 마침표 없는 쉼표의 연장선으로 겹치고 스며든다.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을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이야기하며 존재 이유와 의미를 깨닫게 한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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