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12. 2024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 법무사 3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 서평 연재

※ 법무사 3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 연재한 서평입니다.






https://ebook.kabl.kr/magazine/ebooks/202403/76/index.html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포레스트북스, 2023)     



    인간은 누구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네 가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생에 파도가 밀려올 때는 화가 나고 슬프지만 지나고 나면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들 속에 피어난 감정의 결정체가 아포리즘, 금언, 격언 등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주기도 한다.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구멍 난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따스한 온기를 남긴다. 이렇게 우리는 삶 가운데 스며드는 아포리즘에 기대어 공감하고 위로받지만, 절망과 고통의 감정을 선뜻 드러내지 못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을 가슴 한쪽에 남겨 둔다. 그런 순간에 절망도 고통도 인생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끄는 책,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곁에 둔다면 어떨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1788~1860)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세계관 및 예술관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신자살과 어머니의 사교계 활동으로 가정을 불신하게 되었고, 살아온 환경에 영향을 받아 염세주의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1809년 독일 괴팅겐 대학에 입학해 자연과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1811년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2년 후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삶의 비극적인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생전에 여덟 권의 책을 출판했다. 저서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등이 있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 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152쪽)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평생 학자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아버지와 한동안 증오하는 관계가 된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비통과 절망에 빠져 극도로 우울한 날들을 보낸다. 뒤늦게 학문의 길로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체험을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라는 그의 아포리즘은 삶 속에서 체화된 것이다. 실수 뒤엔 항상 우연이 따라오기 때문에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줄지도 모르고, 완벽한 계획을 뿌리부터 틀어지게 만들어 버릴”(151쪽)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우연히 생긴 비극에 자기 징계를 반복하며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일침이 쓴 약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움은 상처 입은 가슴만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벅찬 기쁨을 위해 아름다움은 저렇듯 신비한 모습으로 나의 이마 위를 떠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동요를 느낄 때가 있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필연적으로 파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181-182쪽)    


 

    만약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고, 모두가 부유해지고, 늙지 않고, 사랑하게 되고, 병들지 않는다면”(120쪽) 어떻게 될까. 쇼펜하우어는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의 절정을 맛본 후에 남는 건 ‘권태’뿐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권태로운 인간은 행복한가?”(121쪽)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답으로 그는 아픔을 모르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고, 패배와 좌절 없이 행복은 우리를 방문하지 않으며, 시련의 눈물 없이 웃음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픔”이라는 단어를 건넨다. 아픔을 통해 배우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이며 “아픔으로 인하여 더 성숙해지리라”(181쪽)는 것이다. 그의 문답을 통해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해할 것도 없는 인생 그 자체를 깨닫는다. 흔들림 속에 상처 입으며 아름다움으로 거듭나는 자신의 인생을 보듬게 된다.


    

    쇼펜하우어를 탐구했던 칼 구스타프 융은 그에 대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쇼펜하우어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걸로 알려져 있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진다고 전하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준다. 아포리즘의 집약판으로 볼 수 있는 『당신은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책 속에 담긴 삶의 통찰과 인생 조언은 그의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6쪽)시킨 것이다. 이렇게 절망에서 출발한 그의 철학은 사람들이 아픔을 마주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힘을 준다.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힘듦과 고통 속에 흔들리고 있다면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산책하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 볼 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 글쓰기의 힘, '쓰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