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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31. 2024

읽고 쓰는 루틴의 시작

단독 에세이 최종원고 마감 후 드는 생각






올해 들어 쓰기 시작한 단독 저서 원고를 며칠 전에 마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2020년 여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사 년만이다. 작년에 쓴 공저 두 권에 이어 올해도 한 권의 공저와 단독 저서 원고 작업을 끝마치고 여름을 맞이하는 감회가 새롭다. 이십 대 문학을 전공하고 글 쓰는 직업을 이어오다가 긴 외도처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 끝에 문학의 세계로 돌아와 보낸 4년은 연극에 비유해 예행연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독 에세이 최종원고는 지난 화요일 새벽 4시에 내 손을 떠났다. 원고 파일을 업로드하고 난 후, 드디어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후회하는 마음도 일었다. 첫째로, 시도해 보기 전에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분량의 원고를 써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마침내 해냈다는 안도와 뿌듯한 마음이 뒤따랐다.



그런 마음 한편으로 좀 더 집중해서 퇴고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퇴고 작업을 하면서 마음이 좀 느슨해졌던 탓이다. 여러 일정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원고를 다시 마주하기 두려운 마음도 컸다. 주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져 단어와 문장을 촘촘하게 다듬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표현되지 않았다. 이론 강의와 원고 피드백을 받으며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내려와 언어화시키는 데 역량이 따라주지 못했다. 부족한 채로 떠나보낸 글을 활자화된 책으로 마주할 생각에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최종원고를 마감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도 있듯 첫 책에 발휘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을 쏟아부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새로운 글로 하루하루 채워나가자고 자신을 다독인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한 권의 책 속에 지나온 내 삶의 흔적을 탈탈 털어 넣어 텅 빈 항아리로 생각을 비워냈다. 그래서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싹튼다.



이제 본격적인 글쓰기의 무대 앞에 서 있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고민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삶의 조각들 속에서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2주 동안 함께 읽기로 찾아낸 책 속의 글줄에서 실마리를 얻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녀는 손에 쥐어야 할 다수의 물건들과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게 두려웠다. 그녀는 어떻게 중요한 사건들과 잡다한 사건, 그녀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온 수천 번의 나날들이 쌓인 이 기억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 아니 에르노, 《세월》, 1984BOOKS, 2019, p.198



아니 에르노는 자전소설 《세월》에서 기억 속에 담긴 세월을 개인과 사회의 맞물린 역사로 연결해 이야기한다. 작가 개인의 시선과 프랑스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포괄적인 시선을 그물망처럼 엮어 촘촘하게 글을 쓴다. 소설 속의 ‘그녀’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끌어 온 수천 번의 나날들이 쌓인 이 기억들을 정리”(198쪽)하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이 투영된다.



개인의 삶에서 나아가 시대의 얼굴을 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줄이다.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떤 글을 써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내 삶 가운데 진행 중인 다양한 책모임,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생각이 곁가지를 내며 방향을 잡아갈 것이다.



이제 다시 '읽고 쓰는 루틴'을 찾아가기 위한 시작점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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