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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08. 2024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법무사 8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 서평 연재

※ <법무사> 8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에 게재된 서평 연재 글입니다.


https://ebook.kabl.kr/magazine/ebooks/202408/74/index.html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평론아카데미, 2022)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10쪽)     


   ‘허무’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다. 인생의 무의미나 쓸쓸함을 일컫는다. 일상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희로애락보다 무겁고 깊다. 이런 허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모든 가치와 의미가 없다고 믿으면서도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좌절하거나 체념해 삶의 의미를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사상사 연구자 김영민이 쓴 책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 ‘허무’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주제로 다룬다. 저자는 책 속에서 ‘허무한 인생과 더불어 사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허무’에 대해 영혼이 있는 한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10쪽)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삶의 정답처럼 느껴지는 희망, 선의,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꾸며,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을 직면한다.


   이 책의 저자 김영민은 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이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허무’를 주제로 한 이 책은 북송 시대 문장가 소식의 <적벽부>를 토대로 썼다. 저자는 ‘중국정치사상사’와 ‘인생의 허무’를 연결한 강연 이후,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생각을 다양한 지면에 발표해 왔다. 그 글들을 <적벽부>와 같은 흐름에 맞추어 새롭게 재구성했다. 책 속에 시와 소설, 그림과 영화 등 수많은 예술작품을 담아, 인생의 허무에 대해 앞서 고민한 이들의 사유를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해석했다. 그의 저서로는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비롯해,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 등이 있다.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 재즈는 즉흥적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101-103쪽)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한의 존재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대학, 직장, 결혼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삶은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애니메이션 <소울>(2020)의 이야기로 삶의 의미에 답한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미국 뉴욕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음악 교사다. 그는 “갈채를 받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멋진 공연”을 하는 진짜 꿈이 있다. 그런데 목표 달성 직전에 하수구에 빠져 죽으면서 그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저승에 간 조는 천신만고 끝에 이승으로 돌아와 연주에 참여하지만, 삶의 의미가 ‘유명한 연주자’가 되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이란 미리 정해놓은 목표의 수단이 아니라고 자각하면서 진짜 갱생을 시작한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103쪽)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유연하게 삶을 연주하며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삶의 갱생을 시작해 볼 수 있다.      


   김영민의 인문에세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나아간다. 목적을 달성해도 기대만큼 기쁘지 않고 목적 달성에 실패해도 허무가 엄습했던 순간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 없는 삶을 살기 위해”(292쪽)서는 적극적으로 쉬고,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삶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며 사는 것에서 벗어나, “허무를 다스리며”(293쪽), 실제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유머와 해학, 통찰로 반짝이는 책 속의 문장에서 그의 진심이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쓸쓸하게 다가오던 허무의 무게를 덜어내 주며 위로와 공감을 얹는다. 더불어 이 책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회화와 벽화, 판화 등 다양한 예술작품 이미지로 허무를 직관할 수 있도록 이끌며 글의 이해를 돕는다. 그 길 끝에 무심한 척 외면해 왔던 ‘허무’라는 두 글자 속 텅 빈 마음을 받아들이며 더불어 살아 볼 용기를 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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