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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ul 10. 2021

내 안에 들어앉은 추억의 한옥에서 두 집 살이 해요

즐거운 나의 집 (사진:Pixabay)

세상에 태어나 어느 적엔가 내 이름 석 자를 알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의 얼굴을 익히고 우리 집의 형체를 담았다. 가족만큼이나 소중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오래전에 그 집을 떠나왔는데도 여전히 마음의 쉼터였다. 이제는 아예 바퀴를 달고 안에 들어앉아 두 집 살이를 하고 있다.




여섯일곱 살쯤 되었을까.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기와집 대청마루에 앉아 있다. 어른들은 농사지으러 갔고 언니 오빠는 학교에 갔다. 여자아이는 언니 오빠를 기다리며 널찍한 마당 너머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에 솜사탕처럼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떠다닌다.


여자아이 등 뒤로 기와집 대청마루가 가로로 길게 뻗어 작은방과 방, 머릿방을 일직선으로 이어준다. 대청마루 한가운데 방 여닫이문이 반쯤 열려 있다. 큰오른쪽으로 부엌살림을 넣어두는 광(창고)이  머릿방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부엌 문이 있고 작은방으로 이어진다. 여닫이 방문마다 쇠로 된 동그란 문고리가 달려 있다.


앞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대청마루에서 토방을 딛고 껑충 뛰어내려 가 오른머릿방을 끼고 돌아가면 아궁이가 있고, 쌀을 보관하는 큰 광이 있다. 광을 끼고 돌아가 기와집 뒤안길이 일직선으로 뻗어있다. 뒤안길 따라 오른쪽으로 화단이랑 장독대가 있고 그 위로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방으로 난 뒷문을 열고 걸터앉을 수 있다. 화단에서 봉숭아꽃을 따 손톱을 물들이곤 다. 손톱만 예쁘게 물들여야 하는데 손가락이 온통 울긋불긋해졌다. 


뒤안길 끝에 다다르면 부엌으로 이어지는 뒷문을 만난다. 부엌에는 큰방 작은방 아궁이가 있다. 안방 아궁이 옆에 땅굴을 판 광이 있고, 그곳에 고구마를 저장한다. 고구마를 가득 채운 땅굴 위로 기다란 나무를 줄줄이 얹어 아궁이를 지필 볕 잎을 덮는다. 그 위로 작은 부엌 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로 나가는 문이 있다. 그밖에도 큰방, 작은방으로 들어가는 부엌문이 있고, 반대편 벽면에 붙박이 찬장이랑 개수대가 있다. 큰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나면 TV를 보다가 엄마 등에 업혀 부엌에 난 문을 통해 작은방으로 건너가곤 했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우물가가 나온다. 이곳에서 세수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다. 한겨울에는 손을 호호 불며 뜨거운 물을  데워와 찬물에 섞어 세수했다. 우물가를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 아래에도 땅굴처럼 판 광이 있다. 그곳에 감자를 저장해둔다. 전쟁을 지나온 아버지직접 지은 집이라 피난처 겸 광이 많다.


우물가부터는 안채와 구분되어 세로로 길게 뻗은 아래채가 다. 볕 집 쌓아두는 열린 공간을 시작으로 퇴비를 모아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두세 걸음 내려오면 쪽문이 달린 나무 대문이 있고,  대문 안으로 아이들 서넛이 놀만큼의 공간이 있다. 저녁에는 이곳에서 동갱이(꼬리가 짧은 개)가 잠을 잔다. 대문 옆으로 농기구를 넣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부모님 몰래 낡은 쇠붙이를 가져다가 엿을 바꿔먹었다.


아래채 한가운데 방이 있다. 아랫앞에 공간이 있어서 농사일을 마친 경운기가 들어온다. 아랫방 옆문을 열면 마구간이 모퉁이에 들어가 있다. 엄마소 한 마리와 송아지가 여물을 먹는다. 마구간 앞으로 돼지우리와 닭장이 아래 위로 들어앉아 꿀꿀, 꼬꼬댁, 이중창을 한다. 이곳을 지나면 문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울타리를 끝으로 아랫채를 맺음 한다. 아이들 대여섯이 모여 숨바꼭질하기에 딱 좋았다. 어떤 날은 너무 꼭꼭 숨어 친구 찾기를 포기한 채 끝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퇴비에 발을 잘못 디뎌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했다.


멀리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네 마실 다녀오는지 동갱이가 짧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나무 대문의 쪽문으로 폴짝 뛰어 들어온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토방 아래 돌계단을 밟고 마당으로 껑쭝 뛰어내려 간다. 자기 몸집만 한 잘생긴 동갱이를 끌어안고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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