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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03. 2021

평범한 남자의 일생, 그의 삶이 부활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을까. 평범한 삶을 주셨을까. 평범 이상의 삶을 주셨을까. 답을 알고 살아가면 인생이 쉽고 재미있을까?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고 방황과 갈등, 고통의 크기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가 저마다 감당해야 하는 기쁨과 슬픔, 고독을 견디며 살아간다. 보통 삶을 살아내는 것도 힘겹게 느껴지는 요즘, 딱 중간만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출간 50년 만에 평범함으로 부활에 성공한 장편소설 <스토너>를 만나며 '평범'이라는 단어 주목했다. '평범'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는 예사로움을 뜻한다. 어릴 적부터 예사롭지 않은 형제, 친척, 이웃, 동료들비교하고 견주며  주눅 들기도 다.  어떤 것도 보통 이상을 넘어보지 못한 나는 가슴 한편에 열등감숨긴  그 갭을 줄이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노력들이 헛되게 느껴진다. 각자 타고난 개성대로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윌리엄스 장편소설 <스토너>는 50년 만에 평범함으로 부활에 성공한 남자의 일생이자 우리들의 이야기. 주인공 '스토너'는 빈농의 아들이다. 먹고사는 일을 위해 하루하루 지친 삶을 살아내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그의 감정표현은 서툴다. 아버지는 아들이 농업을 공부해서 힘든 농사를 돕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미주리 대학에 입학시킨다. 그는 미주리대학에서 가까운 친척집에 기숙하게 되고 축산 일을 도와가 빠듯하게 학교를 다닌다. 그런 '스토너'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영문학에 매료되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 도움을 받아 교수가  것이다.



<스토너> 54page



교수가 된 스토너는 첫사랑에 청혼을 하고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 결혼이 실패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정하게 된다. 아내는 사랑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불완전한 내면의 여성이다. 그는 자녀를 낳아 결혼생활을 인내하며 슬픔과 고독 속에 묵묵히 부부의 연을 유지해간다. 사회적인 통념상 이혼이 쉽지 않던 시절이다. 학문적인 소통이 되는 새로운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벽넘지 못하고 이별한다. 대학에서도 성공에 이 없는 스토너는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미련스러워 보일 만큼 우직하게 학자의 길을 걷는다. 가정에서도 대학에서도 짠내 나는 인생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스토너 390page


생의 끝자락에서 '스토너'는 병마와 싸우며 살아온 날들을 기쁨으로 떠나보낸다. 그의 모습에서 불현듯 평범하게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오버랩된다. 이렇게 살다가는 건가. 고구마 백개는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안타깝게 살다가는 '스토너'의 삶 속에서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읽는다. 대단히 큰 꿈과 포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소리 없이 일생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범함이 곧 성공한 삶이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생이다. 그런데도 '스토너'만큼 살아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친정아버지의 삶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농가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독선생(요즘 말로 개인과외)을 들여 역학을 배웠다. 아이 이름 짓는 것부터 결혼 날짜 잡는 일, 돌아가신 분 산소 정하는 일  온갖 동네 대소사에 재능을 기부했다. 유순하고 말이 없고 인물이 좋았던 아버지는 신부 될 사람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중매로 결혼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었지만 평생 부부 사이가 남달리 좋으셨다. 결혼  사랑이었을지라도 아버지의 사랑과 결혼은 성공적인 셈이다. 그 대신 기가 센 어머니와 사고뭉치 남동생, 먼저 떠나보낸 둘째 아들, 서울 상경 후 자립하기 등의 고된 삶을 인내하며 살아내셨다.


다음 주면 올해 여든 하나 는 아버지의 생신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지 3년 반이 되어간다. 몸의 움직임은 둔화되었지만 기억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유지하고 사신다.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질병에 적응했고, 건강하실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웃을 일도 많았다. 말수가 워낙 없으신 아버지께 나는 가끔 이렇게 말씀드린다.

"아버지는 이만큼  것도 잘 사신 거예요. 시골에서 텃세 심한 외가살이를 잘 이겨냈고, 서울로 상경해서 자식들 키우고 결혼시키고 빚 없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신 것만도 대단하신 거예요."

"늬가 내 맘을 알아주니 고맙다."

위트 있게 한 마디씩 건네는 아버지를 보며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는다. 평범한 남자의 일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가 아버지의 삶이 슬프지 않다. 20대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로 살아보니 진심으로 아버지의 삶이 존경스럽다. 세월이 흘러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회고할까.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스토너'의 삶만큼, 아버지의 삶만큼 기쁨과 슬픔과 고독을 인내하며 잘 살아냈노라고, 기쁨으로 내 삶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스토너>는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50년 만에 부활에 성공했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전 세계를 매료시키며 유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로 내셔널 북 어워드상(미국에서 문학 작품의 대중화를 위하여 제정)을 수상한 존 윌리엄스의 대표작이다. 존 윌리엄스(1922-1994)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에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 창작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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