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다. 당대 낭만주의 음악의 선도적 존재였다는 브람스 음악이 궁금해진다. 유튜브에서 브람스 콘체르토(concerto, 협주곡)를 틀어놓고 책 속으로 사뿐하게 빠져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수와즈 사강은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났다. 1954년 열아홉 살에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커다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해 비평가상을 받은 프랑수와즈 사강은 불과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에 이 책을 썼으며,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로 불린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난해하고 모호하고 고독한 사랑 이야기다. 이 책에서도 사랑 이야기의 빼놓을 수 없는 메뉴로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전혀 다른 색깔의 두 사랑 앞에서 방황하는 폴의 심리 변화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녀와 연결된 로제와 시몽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난해하고 모호하고 고독한 사랑의 감정을 열정과 권태로, 젊음과 늙어감의 감정으로 긴장감 있게 대비시킨다. 그래서인지 진부한 사랑이야기처럼 느껴지다가 세 남녀 주인공의 심리적인 갈등의 늪에 빠져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폴은 서른아홉 살의 실내 장식가다. 결혼하고 이혼 경험이 한 번 있는 그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옷도 감각 있게 잘 입는다. 그녀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온 연인 로제에게 익숙해져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로제는 폴을 사랑하면서도 무심하고 제멋대로이면서 구속을 싫어한다.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고 하지만 불성실한 로제를 인내하는 폴이 못내 답답하고 안타깝다. 결국 로제를 향한 폴의 일방적인 감정과 인내와 배려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깊은 고독감을 안겨 준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일 때문에 찾아간 집에서 몽상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스물네 살 청년 변호사 시몽을 만난다. 시몽은 폴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고독 형을 선고한다. 스물네 살의 잘생긴 성인 남자가 지적인 유머로 장난스럽게 허를 찌른다면 어떤 마음일까?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46page>
폴에게 첫눈에 반한 시몽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어느 날, 폴은 시몽이 보낸 속달 우편(과거에는 시적으로 푸른 쪽지라고 불렀던)을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전축을 열고 음반을 찾아본다. 여러 음반들 중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브람스 콘체르토를 듣기 시작한다.
시몽의 열정적인 구애에도 폴의 마음은 로제에 대한 사랑으로 굳건하다. 육 년 전부터 연인 로제에게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운 상태로 늙어갈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지키고 싶어 하는 폴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된다. 누구라도 변화와 새로운 시작은 두렵다.
그런 결심에도 폴은 연인 로제에게 느끼는 결핍, 고독의 감정을 비집고 들어오는 시몽의 순수한 열정에 갈등한다.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 하는 시몽의 사랑을 불안함과 호기심 속에 받아들인다. 서른아홉 살 폴은 스물네 살 시몽의 젊음이 부럽고 버겁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늙어가는 나이가 도드라져 서글프다. 결국 폴은 시몽과의 이별을 선택한다. 이별하는 순간에도 떠나가는 시몽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한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시몽을 부러워한다. 폴은 시몽의 젊음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을까.
시몽을 떠나보낸 폴은 서로에게 길들여진 연인 로제와 재회하고 연인의 일상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로제는 제멋대로인 채 바뀌지 않는다. 로제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는 알면서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채 스스로에게 평생 고독 형을 선고한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갈래길에서 폴과 같은 선택을 할는지 모른다. 설렘을 주는 사랑의 뒷맛이 왠지 씁쓸하다.
나라면 선택의 기로에서 로제와 시몽 중에 누구를 선택할까? 아마도 시몽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스물여덟에 결혼하기까지 네 살 이상의 나이 차이 나는 연상을 선호했다. 오빠가 셋인 집의 막내로 자라 듬직하고 보호받는 느낌을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연애는 달랐다. 짝사랑이든 마주 보는 사랑이든 감정이 개입되면 설렘은 순간일 뿐 외롭고 고독했다. 사랑의 실체는 모호하고 난해했다. 내가 더 많이 상대방을 좋아하고 바라볼수록 피로감이 커지고 지쳐갔다.
그럴 즈음이었다. 스물일곱에 직장 동기들하고 미팅을 했는데, 그곳에서 한 살 많은 남편을 만났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 중에 사회 경험이 가장 적었다. 한 살 정도의 나이차는 연하의 느낌을 주었다. 연애 시절에 남편은 좋아하는 감정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했다. 복잡한 감정의 줄타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일 년 반 연애 끝에 순조롭게 결혼했다. 얼굴만 봐도 설레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지난 지 오래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신뢰에서 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묵은지처럼 숙성되어 설렘 대신 정(情)으로 깊은 유대감을 맺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