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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23. 2021

'그 여자네 집'에 갇힌 사랑

<그 여자네 집> 박완서 소설, 문학동네, 2013

 

언젠가 단편소설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던 차에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 <그 여자네 집(문학동네, 2013)>을 읽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당시 선망했던 작가다. 그 시절에 인상 깊게 읽었던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단편소설을 지금도 기억한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경험하던 때였다. <그 여자네 집>을 읽으며 오랜 세월 묵혀두었던 그 시절의 감동이 설렘으로 되살아났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 재학 중 한국 전쟁을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 40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향년 80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40여 년 간 작품 활동을 했다.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다수의 걸작을 남겼고, 한국문학 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여자네 집>은 문학동네에서 출간 제안을 받아 펴낸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전 7권)> 중에 6번째 전집이다. 7년 전에 창비에서 나온 단행본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제목만 바꾼 책이다.



박완서 단편소설 6번째 전집인 <그 여자네 집>은 마른 꽃, 환각의 나비,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6번째 전집의 대표작으로 이름 붙인 '그 여자네 집'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북한 돕기 시낭송회에 참여하게 된 주인공(나)이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 낭송을 준비한다. 주인공(나)은 시 속의 이야기가 고향마을 곱단이와 만득이 이야기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추억 속의 곱단이와 만득이의 연애 이야기를 관찰자적인 입장으로 풀어나간다.



곱단이는 범강달장이 같은 아들을
내리 넷이나 둔 집의 막내딸이자 고명딸이었다. 부지런한 농사꾼 아버지와 착실한 아들들은 가을이면 우리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이엉을 이었다.
다섯 장정이 휘딱 해치울 일이건만
제일 먼저 곱단이네 지붕에 올라앉아 부산을 떠는 건 만득이였다. 만득이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읍내 중학생이라 품앗이 일에서는 저절로 제외되곤 했건만 곱단이네가 일손이 모자라는 집도 아닌데 제일 먼저 달려들곤 했다.

                           -193쪽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선남선녀의 풋풋한 연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인정받는 곱단이와 만득이의 연애는 두근두근 첫사랑의 설렘을 준다. 그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완성되길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시대적인 폭풍우를 만나 급류를 탄다. 거센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분노와 한, 슬픔이 들어앉는다. 세월이 흐르고, 주인공(나)은 노인이 된 만득이를 실향민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뒷이야기를 듣는다.



<그 여자네 집>은 시대불문 만인의 관심사인 '사랑'이라는 소재에 시대적인 상황을 버무려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애달프게 녹여낸다. 한 문장 한 문장 리듬감 있게 써 내려간 언어들의 향연 속에 등장인물들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살아 숨 쉰다.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드라마처럼 입체감 있게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된다. 그만큼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그 여자네 집>은 일상의 삶과 시대적인 이슈를 한데 뭉뚱그려 읽는 이의 마음을 이야기 속으로 흡입력 있게 끌어들인다. 아울러 잊혀가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적인 아픔, 분노, 한을 갑분이와 만득이의 향기롭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담아 전한다. 사랑이라는 가벼운 주제를 가볍지 않게, 전쟁과 분단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깊이 있게 써 내려간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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